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신율의 정치 읽기] 실언·오해 막을 ‘막말 방지 매뉴얼’ 필요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은 7월 말경 참의원 선거를 치른다. 양원제를 채택한 일본에서 참의원은 미국으로 치면 상원에 해당한다. 참의원 임기는 6년이다. 중의원과는 달리 임기 중 해산하지 않는다. 일본은 참의원 구성 의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의원을 3년에 한 번씩 선출한다. 미국이 하원의원을 2년에 한 번씩 번갈아 선출하는 이치와 같다. 즉, 정권에 대한 일종의 중간평가 역할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선거가 너무 자주 있다며, 국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는 방안을 추진하자는 말이 가끔 나온다. 일본이나 미국 사례를 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지 알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중간평가하는 것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 74명(1인 선거구 32명 포함), 비례대표 50명 등 모두 124명을 선출한다. 참의원 전체 의석 중 거의 절반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평화헌법 개정’ 여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선거를 치르지 않는 의석(비개선 의석)은 121석인데, 121석 중 현재 집권당 연합인 자민·공명당은 70석을 차지한다. 아베 일본 총리가 개헌을 추진하려면 이번 선거에서 추가로 87석을 획득해야만 한다. 하지만 87석을 확보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선출되는 124석 중 약 70.2%를 가져와야 가능하다.

더구나 개헌을 저지하려는 야당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입헌민주·국민민주·공산·사민당과 사회보장 재건 국민회의 등 5개 야당은 1인 선거구 32곳 가운데 30곳에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또 하나 시사점이 있다. 일본은 야당끼리 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정상이다. 우리는 여야 단일화라는 특이한 현상을 목도한 바 있다. 지난 4·3 재보선 당시 창원 성산 지역구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정의당 간에 후보를 단일화했다. 정권 권력 독주를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야당이라는 의미에서,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선거를 앞둔 아베 정권은 입조심·몸조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심’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올림픽담당 장관은 “부흥(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복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다카하시 의원”이라 말했다. 다시 말해 막대한 피해를 안긴 국가적 재난의 해결보다 정치인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막말로 인해 그는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가. 일본 자민당은 소속 의원과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 ‘실언’ ‘오해’를 방지하려면”이라는 제목의 ‘막말 방지 매뉴얼’을 배포했다. 매뉴얼의 첫머리에는 “발언은 ‘편집돼’ 사용된다는 점을 의식하라”고 돼 있다. 본인의 발언 의도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아예 하지를 말라는 의미다. 전 세계 모든 정치인이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다.

5개 항에 걸친 ‘입조심 패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첫 번째는 ‘역사 인식, 정치 신조에 대한 개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둘째는 ‘성별·성소수자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피해야 하며 세 번째, ‘사고·재해에 배려가 부족한 발언’은 절대 해서는 안 되고 넷째, ‘병이나 노인에 대한 발언’을 할 때는 극도로 조심해야 하며 다섯째, ‘친한 사람과 잡담할 때 사용하는 표현’도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괴상한 역사 인식에서 파생되는 왜곡된 망언을 스스럼없이 하는 일본 정치인을 적지 않게 봐야 했던 우리로서는, 앞으로 일본 정치인이 진짜 이런 식으로 입조심을 할지 두고 봐야겠다.

자민당 ‘말조심 매뉴얼’의 나머지 부분은 우리나라 정치인의 막말을 모델로 해서 작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망언을 돌이켜보면 이 매뉴얼에서 지적한 패턴으로 간단히 요약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노인 폄하 발언은 잊을 만하면 나왔고, ‘사고·재해에 대해 배려가 아주 부족한’ 발언도 최근 있었다. ‘한센병’ 발언 논란처럼 특정 병에 걸린 환우나 그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든 일도 있었고, 친한 사람과의 잡담식 표현과 언급이 문제가 된 것도 역시 최근 사례다.

자민당 매뉴얼을 보면 정치인의 막말은 국가를 초월해 아주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막말의 국제화’는 국제적 차원 포퓰리즘의 부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포퓰리스트적 성격이 다분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을 생각해보면 ‘막말의 국제화’가 분명 ‘세계적 차원의 포퓰리즘 부흥’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정치학자 데커(Decker)는 포퓰리스트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의 해결 과정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라 했다. 특정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대의민주주의 아래 의회는 갈등 당사자를 부르거나 전문가를 불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일반 국민은 정치적 과정에서 자신들이 소외됐다 생각하고, 이런 과정이 지극히 불투명하다고 느낀다. 포퓰리스트들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며 사안과 문제 해결 과정을 자기 위주로 단순화시킨다는 것이 데커의 정리다.

물론 사안과 문제 해결 과정을 단순화시킨다 해도 진짜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들은 사안의 단순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 하고 실제로 종종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포퓰리스트들은 단순화된 언어와 SNS를 동원한다. 이렇듯 사안을 단순화시킴과 동시에 ‘단순화된’ 사안을 국민에게 쉬운 언어로 전달하려다 대부분 ‘사고’를 친다. 쉽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과격한 언어가 난무하고 결과적으로 이른바 막말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막말을 한 정치인을 포퓰리스트 범주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포퓰리스트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특정 사안을 단순하게 표현함으로써 상대를 공격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려 한다는 것은 포퓰리스트와 마찬가지다. 여기서 국민적 공감대는 엄밀히는 자기가 속한 정당의 적극적 지지자들 공감대를 의미한다. 반대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자신을 공격하는 막말에 공감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정치의 특수성이 드러난다. 미국이나 일본은 그마나 중도층이 존재하는데, 우리나라는 정치적 중도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중산층이 그 나라 경제를 건전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듯, 정치에서도 중도층의 존재는 정치가 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도층이 약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양극화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수록 정치인들은 진영 논리에 빠지고, 진영 논리에 빠진 정치인은 발언 강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이때 SNS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치적으로 SNS는 진영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치인이 이런 SNS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여론을 잘못 해석하는 자기만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막말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다.

일반 유권자들이 생각해볼 측면이 있다. 과연 막말 정치인이 제대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는가다. 과거에 막말을 했다 해도 지금 잘나가는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유권자도 반성할 측면은 있다. 막말을 정치판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막말로 인해 감정이 상하면 언젠가 저절로 막말이 튀어나와 다시 그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정치인이 그 고리를 끊기는 힘들다. 당사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유권자들이 막말을 냉엄히 꾸짖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인이 비난받아 마땅할 일을 자주 하고 국민은 비판하지만, 때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2호 (2019.06.12~2019.06.1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