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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생생과학] 바닷물을 마실 수 있게… 역삼투압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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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로 바닷물 밀어내면

초미세 구멍 뚫린 필터에

소금 걸러지고 물만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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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홍해 연안의 쇼아이바에 두산중공업이 건설한 해수담수화 설비. 두산중공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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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에는 아직 물이 두어 모금 남아 있었다. 노인은 새우를 먹고 나서 반 모금쯤 물을 마셨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는 홀로 조각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 노인이 물을 아껴 마시는 상황이 지속된다. 온통 주변이 물뿐인 바다 한가운데 떠 있으면서도 바닷물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소설 속 노인의 신세는 오랜 세월 인류가 겪어온 아이러니컬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지구 표면의 자그마치 70%가 물이지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은 1%뿐이기 때문이다.

‘해수 담수화’는 이 같은 상황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기술이다. 여전히 식수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약 11억명의 지구촌 이웃들을 위해서도 이 기술은 필요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약 98%를 차지하는 바닷물에서 염분을 제거해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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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방식 해수 담수화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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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전 이미 상용화

1960년대에 이미 상용화한 전통적인 해수 담수화 방식은 ‘증발식’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실험실에서 비커에 바닷물(해수)을 담고 가열해 여기서 발생한 수증기를 찬 유리관으로 통과시키면 유리관 밖으로는 염분이 제거된 물(담수)이 나온다. 수증기가 응축해 물로 바뀌는 것이다. 바닷물에 들어 있던 염분은 비커 안에 남고 물만 증발해 나오는 원리다.

물론 증발식 해수 담수화 설비가 비커나 유리관을 쓰지는 않는다. 실제 산업 현장의 설비는 철로 만든 커다란 직육면체 용기와 이를 연결하는 대형 관이 설치돼 있는 형태다. 바닷물을 가열하고 수증기를 증발시키는 걸 반복하되 온도와 압력을 변화시키며 담수 양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바닷물을 끓이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보일러로 바닷물을 직접 끓이는 방법도 있겠지만 비용이 문제다. 대부분의 증발식 해수 담수화 설비가 발전소 옆에 위치하고 있는 데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동안 발생한 열의 일부를 증기 상태로 해수 담수화 설비로 옮겨 바닷물 가열에 사용하는 것이다. 담수를 얻은 뒤 남은 해수는 염분 농도가 높아져 더 짜진다. 이는 다시 바다로 흘려 보낸다. 증발해서 담수화하는 물은 전체 설비에 투입된 바닷물 양의 20~30% 정도다.

이런 공정을 거쳐 생산한 담수는 어떤 맛일까. 바닷물에서 염분과 각종 용해물질을 제거해 얻어낸 담수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그야말로 맹물이다. 수돗물이나 지하수 등을 가열해 불순물을 제거해 얻는 증류수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담수에 미네랄 등의 성분을 다시 섞으면 담수의 맛은 샘물 또는 수돗물과 비슷해진다.

◇효율 더 높은 역삼투압 방식

증발식 해수 담수화 기술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 역삼투압 방식이다. 이 방식은 정수기의 원리와 비슷하다. 지름 0.001마이크론(1마이크론=100만분의 1m) 정도의 구멍이 수없이 뚫린 반투막을 사이에 놓고 양쪽에 바닷물과 담수의 양을 똑같이 부으면 결국 바닷물 쪽의 높이가 더 높아진다. 담수가 막을 통과해 바닷물 쪽으로 이동하면서 양쪽의 염분 농도를 균등하게 맞추기 때문이다. 이를 삼투 현상이라 하고, 이때 발생하는 압력의 크기를 삼투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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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투압 방식의 해수 담수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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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상태에서 높이가 올라간 바닷물 쪽에 삼투압보다 강한 압력을 가해 밀어내면 염분을 제외한 물만 반투막을 통과해 나가면서 담수 쪽의 높이가 반대로 높아진다. 이후 담수 쪽 물을 분리해내면 마실 수 있는 물을 얻게 된다. 반투막을 통과하지 못한 바닷물은 염분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더 짜진다. 이는 증발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바다로 흘려 보낸다. 역삼투압 해수 담수화 공정은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담수 양을 늘려간다.

역삼투압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는 담수 양은 투입한 바닷물 전체의 40~45%에 이른다. 증발식보다 투입 원료(해수) 대비 생산(담수) 효율이 높은 셈이다. 이 공정에는 바닷물에 압력을 가하는 데 필요한 펌프를 설치하는 데 비용이 든다. 하지만 증발식 해수 담수화에 쓰이는 열(증기) 역시 인근 발전소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들여오는 것이다. 노형근 두산중공업 수석연구원은 “전체 비용으로 따지면 증발식보다 역삼투압 방식이 담수 생산 효율이 더 높다”며 “1990년대 이후 건설된 해수 담수화 설비 대부분이 증발식 대신 역삼투압 방식을 채택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전 같지 않은 해수 담수화 시장

역삼투압 방식의 해수 담수화 공정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반투막은 셀룰로오스(Cellulose) 혹은 폴리아미드(Polyamide) 재질로 돼 있어 이론적으로는 5~1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담수화 과정을 거치면서 염분을 비롯한 여러 해수 성분들을 걸러내기 때문에 공정 운영 도중에 수시로 이물질을 제거하는 청소를 해야 한다. 역삼투압 방식의 또 다른 핵심 설비인 펌프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유럽 제품이 널리 쓰이고 있다.

국내 해수 담수화 기술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두산중공업은 1978년 사우디아라비아 파라잔 사업을 시작으로 해수 담수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후자이라, 사우디아라비아 쇼아이바 등 중동 지역의 해수 담수화 설비 건설 사업을 다수 수주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두산중공업에 따르면 요즘 해수 담수화 시장 상황은 예전 같지 않다. 저가 공세를 펼치는 경쟁업체가 많아졌고, 주 고객인 중동 국가들의 발주 방식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년에는 중동 국가들이 해수 담수화 설비를 직접 발주하고 건설 후에는 한꺼번에 사들여 운영하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민간 컨소시엄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해수 담수화 설비의 건설과 운영을 도맡는 추세다. SPC가 담수를 생산, 공급하고 중동 국가는 공급받은 양만큼의 비용만 지불하는 식의 민간 투자 방식 발주가 늘었다고 두산중공업 측은 설명했다. 이른바 ‘오일 머니’의 힘이 떨어지면서 해수 담수화 산업이 누리던 중동 특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 지역의 영향을 줄이면서 해수 담수화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담수 생산 효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