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광릉숲 생물들아 나와라”…1박2일 생물탐사대작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애니멀피플] ‘바이오블리츠 2019’ 르포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 뭔가 잡았어요!”

한 어린이가 조심스럽게 포충망을 누르며 소리쳤다. 광릉숲 ‘곤충 탐사대’를 이끌던 국립수목원 김무성 연구원이 어린이의 포충망에서 조심스레 꺼낸 곤충은 사슴벌레붙이. “우아, 잘 찾았네. 이건 광릉숲에만 사는 거야”. 새로 발견한 곤충이 전세계에서 오직 광릉숲에만 산다는 설명에 일반 참가자들이 김 연구원 주위로 모여들었다.

조류 탐사를 이끈 김인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박사의 손끝을 따라 스무개의 눈동자가 조용히 움직였다. 숨소리·발소리도 죽인 10여명의 참가자가 뚫어지게 바라본 곳은 새가 앉아있다고 추측되는 나뭇가지 사이. 마침내 쌍안경을 든 한 참가자들이 “보인다, 보인다”를 외치자, 카메라를 든 참가자들은 흔히 뱁새라고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를 한장의 사진에 담기 위해 조심히 셔터를 눌렀다.

_______
500년된 ‘비밀의 숲’ 생물 덕후들로 들썩


지난 주말, 각 분야의 ‘생물 덕후’들이 국립수목원에 모였다. 5월25~26일 이틀간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진행된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9’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바이오블리츠(BioBlitz·생물다양성 탐사 대작전)는 생물 분류군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함께하는 과학참여 활동으로, 특정 지역의 생물종을 24시간 동안 찾아 목록을 만드는 행사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국립수목원 개원 2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에서 펼쳐졌다. 500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해 온 ‘비밀의 숲’이 손님들로 들썩인 이유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5일 토요일 낮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행사장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오후 2시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이 개회를 선언하자, 전광판에 24시간 타이머가 떠올랐다.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하는 ‘생물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개회와 함께 식물, 곤충, 조류, 어류, 지의류 등으로 나뉜 총 18개의 조사단은 바로 광릉숲 생물 조사에 들어갔다.

일반 참가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곤충 조사였다. 모두 네 그룹으로 나뉜 조사단은 난이도에 따라 상, 중, 하로 나뉘었다. 수목원 내부 전시관 주변을 돌며 조사를 벌인 ‘곤충탐사 하’팀에 합류해 보았다. 20여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곤충 하팀은 비록 전문성을 덜 할지 모르겠으나 열정만큼은 돋보였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린 참가자들은 자기 몸보다 큰 포충망을 어깨에 메고, 한손엔 암모니아 독병을 쥐고, 눈으로는 한 마리라도 더 찾으려고 눈빛을 반짝였다. “광릉숲의 대표 곤충인 장수하늘소를 만나는 게 목표”인 김도훈(7살) 어린이는 비록 장수하늘소는 못 만났지만, 광릉숲에만 서식하는 사슴벌레붙이를 채집했다. 채집통에 이미 모시나비, 흰줄나비, 사슴풍뎅이 등의 곤충을 잡은 참가자도 여럿이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곤충 조사에서는 사슴벌레붙이뿐 아니라 희귀 방아벌레인 광릉왕맵시벌레를 포함한 총 427종의 곤충이 확인됐다. 임종옥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국내 1만5천여종 곤충 가운데 27%가 남한 면적의 2.2%인 광릉숲에 살고 있다. 특히, 장수하늘소의 경우 멸종위기 1급 천연기념물로 작년까지 5년 연속 광릉숲에서 발견됐다. 성충이 6월 말~7월에 발견되는데, 올해는 조사 시기가 조금 일러 조사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_______
광릉숲만의 크낙새·구렁이 이야기


현장조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행사본부에 마련된 전문가 텐트에서 다른 분류군의 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양서파충류 부스는 채집통 안에 모인 생물을 구경하려는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무자치, 누룩뱀, 도롱뇽, 도마뱀 등이 든 채집통 앞에는 잘 몰랐던 생물의 생태와 특성을 설명하는 간단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 양서파충류 조사에서는 전통적인 주거형태가 현대화하면서 사라진 구렁이와 산림과 자연성이 우수한 곳에서 서식하는 대륙유혈목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이상철 인천대학교 생물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광릉숲에는 3종의 파충류 보호종이 산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구렁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과 아주 가까웠던 종인데 현재는 많이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 종”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정지역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대륙유혈목 또한 참 반가웠다. 대륙유혈목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부터 희소한 종인데 이번 조사를 통해 광릉숲에 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생물 덕후’들의 탐구 열정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현장조사가 모두 끝난 첫째 날 저녁에는 각 분야 생물학자들의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구성된 토크(Talk) 교육이 시작됐다. 강연에는 최근 서울 한 야산에서 발견됐다는 제보로 관심을 모았던 ‘크낙새 이야기’도 포함됐다.

김인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박사는 “제보 사진 속 크낙새는 까막딱따구리로 추정된다. 광릉숲 대표 종인 장수하늘소가 바로 크낙새의 먹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한에서는 1987년 이후 관찰되지 않아 절멸 상태지만, 북한에 2~3쌍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경기도와 국립수목원이 북한 크낙새 번식지에서 알을 도입하여 증식을 시도하는 사업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_______
한밤엔 곤충 조사·새벽엔 조류조사


첫날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야간 곤충 탐사였다. 늦은 밤 9시, 약 60여명의 참가자가 수생식물원 앞에 모여들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곤충을 유인하는 커다란 등불에는 여러 곤충이 자리를 잡았다. 따로 헤드 랜턴, 손전등을 준비한 참가자들은 등불 이외에도 근처 나무나 연못 근처에서 자유롭게 채집활동을 벌였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KAIST)에서 생물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주(21살)씨는 “올해 동아리 친구 8명과 함께 처음 참가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많아서 단순한 체험으로 끝날까 걱정했는데, 연구원분들의 전문적인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둘째 날 조류 탐사는 아침 6시 30분에 시작했지만 모두 100여명이나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여러 그룹으로 나눴지만 예상보다 참가 인원이 많아 직접 새를 관찰하기보다는 소리를 듣고 새에 관한 설명을 듣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날 조사는 평소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광릉숲 학술보존림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류학자가 꿈인 송지빈(14살) 학생은 전날에 이어 세 번이나 조류 탐사에 참가했다. 그는 “제일 좋아하는 새는 넓적부리도요다. 엄청 작고 희귀한데 유부도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그동안 소리로만 들었던 산솔새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조사를 통해 천연기념물인 까막딱따구리, 올빼미, 팔색조, 소쩍새, 솔부엉이, 원앙 6종을 포함하여 총 55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_______
모두 1424종…멸종위기 박쥐 4종도 확인


26일 오후 2시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은 24시간 동안 이 지역에서 조사한 생물 종이 모두 1424종이라고 발표했다. 식물이 612종으로 가장 많았고, 곤충 427종, 버섯·지의류 101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에 처음 이뤄진 원생생물도 47종이 확인됐다.

이번 광릉숲 바이오블리츠에서는 멸종위기 박쥐 4종도 확인됐다. 멸종위기 1급인 작은관코박쥐, 대륙쇠큰수염박쥐, 쇠큰수염박쥐, 관박쥐 등이다. 작은관코박쥐는 2012년 국내에서 처음 관찰된 뒤 지리산, 소백산, 오대산, 점봉산에 이어 다섯 번째로 광릉숲에서도 발견된 것이다. 김선숙 국립생태원 박사는 “광릉숲 활엽수 성숙림지역에서 작은관코박쥐 3마리를 확인했다. 산림성박쥐가 잠자리로 이용하는 고목 밑동의 굴이나, 나무껍질 틈 등이 풍부하여 잠재적 잠자리가 되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는 일반인 241여명, 전문가 129명 등 370여명이 참가했다. 행사 기간 내 시민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전시·체험 행사까지 포함하면 모두 4천8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포천/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