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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아이들의 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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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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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91]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밤이 됐다. 저녁 9시 무렵이 되자 놀이터에 남은 건 당시 네 살 된 내 아이와 일곱 살 여자아이 둘뿐이었다. 자연스레 여자아이의 엄마와 얘기를 하게 됐다.

"일곱 살 아이가 놀이터에 나와서 노는 건 저희 아이뿐이에요." 아이 엄마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4~5세 때는 해가 지도록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았는데 일곱 살이 되니 친구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놀이터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요즘에 왜 놀이터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으면 '뭐 하는 게 있어서, 어디 가야 해서'라며 얼버무리는데 최근에야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단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나오는 대신 집에서 학습지를 하거나 과외를 하거나 학원을 다니고 있던 것이다.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학습지를 시켰죠. 그런데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때려치웠어요." 그러곤 다시 놀이터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다.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큰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 아이 친구들이 하나둘 학습지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섯 살부터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며 학습지를 권하는 지인도 있었다. 아무것도 안 가르치기로 소문난(?)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내 아이를 두고 근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아이에게 학습지를 시키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눈높이 학습지 선생님이 오는 날마다 숙제를 안 한 게 들통날까봐 답안지를 베껴쓰던 내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빨간펜 선생님이 빨간색 연필로 채점을 해 점수를 매기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습지는 내게 대단한 지식을 알려주었다기보다는, 매주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짐일 뿐이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에게 그런 스트레스를 주기는 싫었다.

아이는 놀면서 배운다는 글을 많이 본 탓도 있다. 놀이는 뇌 발달뿐 아니라 정서와 인지 발달, 나아가 사회성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발달시키고 정서적인 안정을 얻게 되며 집중력과 창의력을 키우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아이들은 놀잇감이 없는 공간에서조차 놀거리를 찾거나 스스로 만들어낸다. 놀이터 주변의 돌을 모아 돌탑을 쌓기도 하고, 돌로 나뭇잎을 으깨 밥상을 차리기도 하고, 매실과 솔방울을 찾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의 놀이터이며, 놀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은 샘솟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새로운 놀이 방법과 규칙을 스스로 정해 함께 즐긴다. 놀이를 통해 서로 교감하고 배움을 터득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을 몸소 느낀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경험하며 세상을 체득하는 교육의 장인 셈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높은 교육열 때문에 어린이의 놀 권리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1959년 유엔은 '아동권리선언'을 통해 '사회와 공공기관은 아동들의 놀 권리가 한층 더 잘 보장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천명했고, 정부도 2015년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실현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부모가, 사회가 동참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놀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더 지키기 어렵다.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 시간을 찾아주면 어떨까. 그런 점에서 아동의 놀이권을 강화하겠다는 최근 정부의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고무적이다.

[권한울 중소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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