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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하나로 60억 매출… 100억은 우스운 인터넷 쇼핑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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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온라인 패션몰 1위 업체 무신사는 지난해 거래액 4500억원, 영업이익 269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1081억원, 영업이익률은 25%에 달한다.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몰 쿠팡(매출 4조4227억원)이 지난해 큰 적자를 내고 영업이익률이 -24.8%인 것과 대조된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 업계가 '적자(赤字) 생존'하며 벼랑 끝 '초저가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무신사는 실속 있는 성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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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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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는 3500여 개 패션 브랜드가 입점한 온라인 편집숍이다. 구두·운동화 항목만 봐도 4900원짜리 저가 제품부터 나이키·아디다스 같은 유명 브랜드, 200만원대 구찌 제품까지 1만8300여 개 품목을 판매한다. 무신사는 판매하는 다양한 제품도 그렇지만 그보다 무신사가 만드는 패션 웹 매거진과 단독으로 공개하는 온라인 브랜드 화보, 회원 470만명이 패션 정보·신변잡기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게시판, 리포터가 촬영한 길거리 멋쟁이 사진 등 넘쳐나는 볼거리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무신사의 매출은 막강한 '콘텐츠 플랫폼'에서 비롯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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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지로 60억 '모나미 패션' - 작년 2월 무신사가 출시한 자체 브랜드 상품인 2만원대 바지는 30만장 팔렸다. 이른바 '모나미 패션(검은 바지+흰 상의)'의 진원지가 무신사다.



최근 이처럼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에서 유통 비즈니스로 나아가 대박을 치는 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 구축→커뮤니티 형성→유통 판매'로 이어지는 사업 모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회원 수백만명이 제공하는 빅데이터로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시장을 지배하는 상품)'를 빠르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고객 대다수가 '밀레니얼(1980~2000년대 출생) 세대'이며, 충성 고객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사업 초기 당장의 수익 창출보다는 콘텐츠 구축에 집중해 소비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시간과 공을 들였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유통 업계에서는 "콘텐츠 플랫폼이 황금알을 낳기 시작한 건 밀레니얼 세대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난 4~5년 사이 벌어진 일"이라며 "이는 신(新)유통혁명이라 부를 만하다"고 말한다.

쇼핑하고 트렌드도 살피는 '온라인 몰링'의 시대

콘텐츠 플랫폼은 오프라인의 복합 쇼핑몰처럼 제품 판매를 넘어 소비자를 다양한 요소로 끌어모은다. 꼭 물건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얻거나, 잡담·오락을 즐기려는 소비자를 붙잡고 '온라인 체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신사의 전신(前身)은 무신사 대표 조만호(37)씨가 고교 3학년이던 2001년 포털 사이트 '프리챌'에 개설한 운동화 마니아 커뮤니티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었다. 원하는 물건을 해외 '직구'로 구입할 수 있는 요즘과 달리, 희귀 나이키 운동화가 '수입 멀티숍'이라고 부르는 로드숍에서 30만~50만원대에 팔리던 시절이었다. 무신사는 당시 1020세대였던 회원들이 어렵게 구한 운동화의 후기·정보를 나누고 자랑하는 공간이었다. 무신사는 2005년 별도의 사이트로 독립했고, 2009년 '무신사 스토어'를 열어 직접 옷과 신발을 팔기 시작했다. 2013년 연간 거래액 100억원을 돌파했고, 작년 4500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무신사 회원의 80%는 18~35세로, 재구매율이 65%에 달한다.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가 올해 초 온라인 소비자 12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신사 회원들은 '구매 목적'(52%)만큼이나, '새로운 트렌드를 살펴보거나'(65%)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접속하는 경우'(48%)도 많았다. 복합 쇼핑몰에서 쇼핑·놀이·공연·교육 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소비 계층인 '몰링족(族)'이 상시 체류하는 무신사의 입점 수수료는 백화점과 비슷한 30% 안팎이다. 높은 수수료에도 입점을 원하는 패션 업체들이 많다. 휠라·커버낫·디스이즈네버댓 같은 국내 브랜드가 무신사를 통해 유행 아이템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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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판매 상품을 조합해 '스타일링' 사진을 공개하면 회원들은 '소화력 굿(good)' '취향 저격 당했다' 같은 댓글을 올린다(왼쪽 사진). 쿠캣 대표 채널 '오늘뭐먹지?'(구독자 560만명)에 올라온 새우장 사진을 누르면 쇼핑몰 '쿠캣마켓'에서 파는 '딱새우장' 페이지로 연결된다. /무신사·쿠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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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룩(look·옷차림)'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한때 검은색 바지에 흰 상의를 걸친 이른바 '모나미 패션'이 길거리를 물들였다. 대표적인 무신사룩 중 하나다. 이곳의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상품 '무신사 스탠다드' 남성용 바지(2만원대)는 지난해 2월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30만장 팔렸다.

초저가 대신 콘텐츠 전쟁

2011년 등장한 패션 앱 스타일쉐어는 '10대 소녀들의 놀이터'가 되면서 날개를 단 경우다. 지난해 거래액은 700억원을 기록했고, 최근 회원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곳은 설립 4년 만인 2015년 패션몰을 열었다. 사춘기 소녀들이 이곳에서 패션 인증 사진을 뽐내고, 다른 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하며 일기장 꾸미듯 앱을 쓴다. 앱에서 '#수학여행'을 검색하면 수학여행 때 찍은 회원들의 사진과 '수학여행추천템'이란 구매 좌표가 함께 뜬다. 'ㅈㅂㅈㅇ, ㄷㅇㄱㅇ(정보좀요, 담아가요)'처럼 이곳 특유의 '댓글 용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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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요리법 소셜미디어 쿠캣은 2017년 말부터 가공식품 쇼핑몰을 열어 최근 거래액 100억원을 돌파했다. 2014년 '오늘뭐먹지?'라는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선보인 쿠캣은 현재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등에 개설한 70여 개 채널에서 290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쿠캣 관계자는 "좋아요·퍼가기·조회 수와 댓글 반응을 통해 시장 수요를 예측하고 내놓은 상품들이 연달아 히트했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출시한 식사 대용 '귀리 쉐이크' 제품은 70만병, 한국판 '악마의 잼'(맛있지만 칼로리가 높은 잼) 콘셉트의 '인절미 스프레드'는 21만5000개가 팔렸다. 채널에서 꼬막비빔밥 콘텐츠가 인기를 끌자, 즉시 꼬막장을 출시해 6개월만에 10만개를 팔았다.

화장품 정보 앱 화해는 설립 4년 만인 지난 2017년 '화해 쇼핑' 기능을 선보였다. 이곳 회원 수는 670만명이다. 400만건 이상의 화장품 사용 후기가 화해의 경쟁력이다. 화해 쇼핑은 출범 1년 만에 거래액 100억원을 넘겼다. 화해 관계자는 "가장 신경 쓰는 점이 콘텐츠의 공정성"이라며 "협찬성 광고 리뷰나 가짜 정보 패턴을 잡아내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다.

990원 제주 항공권, 반값 에어팟, 100원 전쟁…. 초저가 출혈 경쟁으로 공멸(共滅) 위기감이 상존하는 이커머스 업계에서 콘텐츠 플랫폼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세대 경영학과 장대련 교수는 "콘텐츠 큐레이션(curation·정보를 선별 편집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전시하는 것) 능력이 온라인 쇼핑몰의 지속 가능한 이익 구조를 만들어내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한경진 기자(kj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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