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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안보·경제·북한…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 강요받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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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투키디데스 함정’ 빠지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안 통해

미국, 북한 미사일 대응 회의서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 참가 압박

화웨이 놓고 서로 내편 서라 요구

안보, 무역, 대북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 한국에 그어지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이어 화웨이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불거진 경제·안보 이슈로 한국은 선택을 압박받고 있다.

26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측은 지난 9일 서울에서 열린 제11차 한·미·일 안보회의(DTT)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제안했다. 소식통은 “당시 회의 도중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미국 측 발언에선 ‘북한(North Korea)’보다 ‘인도·태평양(Indo-Pacific)’이란 단어가 더 많이 들렸다”며 “일본 측은 미국의 입장을 거들었다”고 전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일본·인도 등이 안보·경제에서 연대한다는 큰 틀의 구상으로, 중국은 이를 중국 봉쇄 전략으로 간주한다.

화웨이 배제에 참여하라는 미국 측 요구에 이어 인도·태평양 전략의 등장은 그간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구사했던 전략적 모호성이 한계를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중의 충돌이 빚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한국이 빠진 모양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2등국이 1등국을 추격해 올라올 때 양자 간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경향을 일컫는 용어다. 김태호 한림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나눠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은 이젠 사안마다 전략적 결단을 요구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과 쇠약해진 미국의 재건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한반도에선 안보·경제·북한 3개 전선에서 대결 구도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미·중은 이들 이슈를 놓고 한국에 누구 편인지를 묻고 있다.

◆“남중국해 견제 않으면 돈 얘기 등장”=미국 정부는 항모 전단을 중동 해역에 보내며 이란 압박에 나서는 와중에도 남중국해 견제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미 해군의 구축함 프레블함이 19일(현지시간) 남중국해의 스카버러(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파나타그) 인근 수역을 지나갔다. 항행의 자유 작전이다. 반면에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모양의 9단선(九段線)을 그은 뒤 그 안을 사실상의 영해로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는 남중국해 포위 구도에 한국도 참여하라는 요구가 된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이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제도화로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곤 한동대 지역학과 교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주저하는 한국을 향해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라며 방위비 분담금을 올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편 들면 중국선 또 보복”=경제 분야에선 트럼프 정부의 직접적 목표는 중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24%며, 중국으로 향하는 수출품의 80%가 중간재라 한국에도 유탄이 불가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꼽은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 사태는 중국 때리기에서 한국 때리기로 번질 가능성을 열어놨다. 미국이 제재하는 불량 국가·기업과 사업하는 제3자에 대해 미국이 불이익을 주는 게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외교가에선 화웨이 사태 때문에 한국과 국제사회 일부가 세컨더리 보이콧의 제재 대상처럼 비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의 내부적인 기류는 유럽 국가의 움직임까지 감안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한국이 미국 정부의 방침을 수용할 경우 사드 배치를 놓고 보복했던 중국이 또 한국을 상대로 괴롭힐 수 있어 문제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맞춰 반화웨이 전선에 가담할 경우 중국은 경제 및 그 이상의 다양한 제재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중 줄다리기 속 빛 바랜 중재자”=북한 문제를 놓고도 ‘완전한 비핵화’를 내건 미국과 북한의 제재 완화 조치에 동조하는 중국의 평행선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남북 협력을 통한 북·미 비핵화 견인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미국 조야에서 불편한 감정을 노출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 속에서 한국의 북핵 중재자 역할도 빛이 바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중국에 기대고 있고, 미국 일각에선 한국의 중재 역할에 불만을 표명하면서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지난해 이후 세 차례나 하고도 현재 좀처럼 비핵화 논의의 주도적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철재·전수진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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