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NGO 발언대]채용비리는 정경유착이 쓴 장편서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2016년도 발언이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잠잠해질 겁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이다. 2015년은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영화가 과장된 줄 알았더니 현실을 그대로 고증한 셈이었다는 시민들의 냉소와, 부패한 권력에 정의감 하나로 맞선 형사가 승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 관객의 쾌감 사이에는 선명한 교집합이 있다. 우리는 부패한 권력이 일상적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들이 언젠가 충분한 징벌을 받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채용비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장의 자식이나 사돈의 팔촌인 누군가는 복잡한 전형을 거치지 않고도 손쉽게 정규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다. 그렇다고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맞은 데 또 맞으면 아픔이 배가되듯 채용비리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분노는 쌓여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노를 제대로 해소해본 적이 없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강원랜드, KT의 부정 채용 청탁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채용 청탁을 받은 임원 중 극히 일부는 실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무수한 청탁자 중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성태 의원은 딸의 부정 입사와 관련한 KT 수사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검찰이 소환 여부를 고민 중이라 하고, 최경환 의원의 중진공 채용 청탁은 부적절한 행위이나 법리적으로 직권남용이라 볼 수 없다는 재판부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채용비리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만을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사건이 아니다. 왜냐고?

‘김성태 의원이 KT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돕는데, 딸을 정규직으로 일하도록 해보라’고 이석채 회장이 지시했다면, 김성태는 KT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을까. 최경환 의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무엇을 맡겨놨길래 ‘내가 결혼도 시킨 아이니 믿고 써보라’며 박철규 이사장에게 배 내놔라 감 내놔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정말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임원의 갑질로 해결되는 일들이었다면 청탁을 하는 을에게 턱을 치켜들고 유세라도 부리지 않았을까.

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은 월권을 행사하는 정치 권력자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채용비리는 빽 없고 돈 없는 청년의 노력을 짓밟은 단편적 사건이 아니라, 정경유착이 쓰고 있는 장편 서사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반복되는 사건을 두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 역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구제하겠다는 원칙과 부정 합격자에 대한 엄격한 제재, 청탁을 받아 실행한 직원을 즉시 퇴출하겠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때론 블라인드 채용과 같은 절차의 투명성에 몰두한 나머지 진짜 근절해야 할 것을 근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채용비리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움직임이 있어야 가능하다. 권력이 쏠리는 곳이 비리의 온상이다. 그 민낯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청탁금지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 등으로 채용비리 근절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