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사설] 馬車 눈치 보며 자동차 길 막으면 마차 좋은 세상이 오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며 이틀 연속 공유 차량 서비스 '타다'의 이재웅 대표를 공격했다. 산업계에선 택시 기사를 비롯해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을 촉발하는 혁신을 불편해하는 정부의 속내가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말로는 '혁신'을 말하지만 속내는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자선 단체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가 혁신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으키면 그것으로 세금을 내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 세금과 일자리로 낙오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기업가가 혁신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선 단체 역할까지 하라고 한다. 어떻게 새 산업이 일어나겠나.

택시 기사, 의사 등 기존 산업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나오면 이들을 설득해 새 산업의 싹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한국 정부는 반발 조짐이 보이면 늘 '사회적 대타협'이란 장막 뒤로 숨는다. '원격 의료'를 활용한 의료 산업화, 가명(假名) 개인 정보 활용을 통한 빅데이터, 핀테크 산업 육성도 의료계·시민단체 반발이 무서워 손을 놓고 있다.

우리가 이해 당사자들의 반목, 정부의 책임 회피로 주저앉아 있는 사이 경쟁국들은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77개국에서 영업 중인 세계 1위 공유 차량 서비스 업체 우버는 증시에 상장돼 시가총액 면에서 자동차 제조사인 GM·포드를 앞서고 있다.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은 연 38조원 규모의 공유 차량 시장을 새로 만들어냈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고객 1억명을 바탕으로 간편 결제, 소액 대출 등 핀테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신(新)민박법'을 만들어 공유 숙박의 물꼬를 텄다. 집주인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180일 이내에서 숙박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우리는 도시에서 내국인에게 방을 빌려주는 게 불법이다. 정부가 지난 1월 내국인 대상 공유 숙박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다.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는데 정부가 마차 주인들 눈치를 보면서 자동차 길을 막으면 마차 주인들이 좋은 세상이 오나. 한국 정부는 그런 줄 아는 모양이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