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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 금주령에… 재주는 학생이 넘고, 돈은 편의점이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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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주류 판매 면허 없어 술 못 파는 학생들 과 운영비 충당 못해 울상

허가 받은 주류업체, 인근 편의점만 이득

조선일보

대학 축제 때 인근 편의점들은 주류 판매 알림판을 캠퍼스에 설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서울 고려대 캠퍼스 안에 놓인 알림판. /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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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알루미늄 양동이를 들고 캠퍼스를 누비고 있었다. 양동이에 적힌 문구는 '청정라거 테라(Terra)'. 안에는 맥주와 소주, 얼음이 들어 있었다. 왜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지 묻자 "교내 주점에서 술을 팔지 않아서, 학교 앞 편의점에서 샀더니 양동이에 담아 주었다"고 답했다.

지난 22일 열린 고려대 축제 현장. 편의점 앞에는 주류업체 '하이트진로'가 차린 부스(천막을 친 공간)가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학교 축제에서 주류 금지가 되고 나서, 올해부터 지점에서 브랜드 홍보하려고 진행하는 행사"라고 했다.

이 '금주령 아닌 금주령'은 지난해 5월 시작됐다. 인하대의 한 단과대학 주점이 축제 기간 술을 팔았다가 주류 판매 면허가 없었다는 이유로 벌금을 냈다. 이에 '왜 인하대만 단속하느냐'는 형평성 지적이 나왔고, 교육부는 같은 달 전국 대학에 "학생들이 주세법을 위반해 벌금 처분을 받는 것을 예방하고, 건전한 대학 축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내렸다.

대학 축제 '금주령'이 내려진 지 1년. 당시에도 "어차피 밖에서 술을 사올 텐데 '눈 가리고 아웅'일 것"이라는 지적은 나왔다. 축제가 열린 대학 캠퍼스에는 역시나 각종 주류업체들이 눈에 띄었다. 단속을 피하는 수법도 더 발전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온 더 락스'로 위스키를 마시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보통 '온 더 락스'는 고가의 독주(毒酒)를 얼음잔에 담아 마시는 것으로, 소주와 맥주를 주로 마시는 대학 축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어디에서 위스키를 갖고 왔느냐고 묻자 학생들은 한 곳을 가리켰다. '조니워커' '잭다니엘' 병이 놓여 있는 3평 정도의 칵테일 부스. 앞에는 학생 2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이 부스는 학교 측의 허가를 받아 축제 기간에만 입점한 곳으로, 캠퍼스 내에 3~4곳이 성업 중이었다. 한 직원은 "오후 2시부터 열었는데 가져온 위스키가 6시간 만에 거의 다 동났다"고 했다.

학교 앞 편의점들은 주류 매출이 20~30배 상승했다. 지난 22일 서울의 한 대학교 인근 편의점은 손님이 컵라면을 먹는 10평 정도 되는 장소에 소주와 맥주 상자를 가득 쌓아 두었다. 보통 가끔 방문해 판매를 지도하는 본사의 매니저도 이날은 직접 매대에서 계산했다. "평소보다 20배 많은 8000병 정도의 소주, 맥주를 들여놨지만, 이것도 부족하다"며 "내일은 오늘보다 2배가량 더 주문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단속을 피하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교 학과에서 운영하는 노상 주점에서 손님이 손을 들고 "술 도우미 부탁합니다!"라고 외쳤다. 한 학생이 달려가 주문을 받았다. "네, 후레시 하나, 카스 캔 두 개요." 그는 곧장 캠퍼스 후문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술 도우미'란 편의점 등에서 술을 대신 사다 주는 심부름꾼이다. 대학교 주점에서 술을 판매하는 게 금지되자, 술값 외에 3000~4000원을 받고 배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주점에서 일하는 학생 김정명(20)씨는 "심부름을 해주니 소문을 타 손님이 몰린다"며 "흑자를 거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소주에 타 마시는 홍초 원액, 레몬 엑기스를 판매하는 주점도 있다. 학교 인근 술집과 2~3일 단기 계약을 맺어 '일일 호프'를 운영하는 과도 늘었다고 한다.

대학 학생회에서는 "학생이 연 축제의 이윤이 결국 어른들에게 가는 꼴"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주류 판매가 금지돼도 술 소비량은 같고, 이득은 주류업체와 편의점이 챙겨 간다는 것이다. 한 사립대 학과대표는 "과 운영비 중 상당 부분을 축제 때 주점에서 벌어 충당했는데, 이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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