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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41)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마케팅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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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주년이다. 1989년 11월 9일, 세계인들의 감격 어린 시선 속에 무거운 콘크리트 장벽은 붕괴되었다. 그 해 태어났던 아이들은 어느덧 서른 살 어른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의 분위기도 30년 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냉전시절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그려졌던 회색 빛 이미지는 당당하고 건강하며 활기찬 모습으로 바뀐 지 오래다. 2019년 전반기가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열기가 지배했다면 후반기는 장벽 30주년 행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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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장벽 붕괴 30년 뒤 이곳은 회색 빛 어두운 분위기대신 젊고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하다./사진=손관승



"과연 이 도시는 베를린 장벽 30주년이라는 세기적인 이벤트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국제적인 이목이 이 도시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정치적 행사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마케팅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니정보] 베를린 장벽

상상력과 창의성, 기획력과 조직력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규모 페스티벌이다. 현재까지 베를린시가 집계한 결과 100개가 넘는 공식행사가 예정되어 있고, 행사에 활용되는 장소도 200개 이상이다.

독일정부는 올 가을 장벽붕괴 30주년을 기념한 2유로 특별 주화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연합의 화폐인 유로화는 정면은 유로화를 쓰는 모든 나라가 같은 문양을 새기지만, 뒤쪽 면은 나라별로 다른 디자인이 허용되는 까닭이다.

베를린 장벽 30주년의 하이라이트는 11월 4일부터 일주일 동안 거행될 30주년 공식 기념행사다. 장벽붕괴에 관여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관련국 정상들이 참석한 대규모 국제행사가 기획되어 있다.

물론 점점 더 강해지는 독일, 그리고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수도 베를린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심사가 편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브렉시트 여부로 혼란에 빠진 영국 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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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박물관 섬과 그 뒤로 보이는 알렉산더 광장의 TV송신탑./사진=손관승



장벽 붕괴와 연관된 7개의 대표적인 장소에서는 특별 야외 전시회가 기획되어 있다. 콘서트, 공개 토론회, 관련자들의 생생한 증언, 독서회, 영화상영, 문학 낭독회, 역사 다큐멘터리, 국제포럼, 영화와 드라마, 음악제 등 거의 대부분의 장르가 베를린 장벽붕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념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부터 록, 재즈, 팝, 힙합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도 광범위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평화혁명의 루트’(The route of the Peaceful Revolution)라는 이름의 행사다. 동독 민주화를 요구 과정의 발자취를 따라서 30년 전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세계 최대의 야외 미술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변한 슈프레 강변의 장벽, 게세마니 교회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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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에 세워졌던 베르나우어 거리에는 장벽 박물관이 생겨 여행자들의 사랑 받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사진=손관승



특히 동독 민주화 시위대의 요구와 동독 공권력 사이에 긴장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11월 4일에는 30년 전처럼 알렉산더 광장에 모여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해체 요구를 하던 상황이 재현된다.

이어서 슈타지 본부가 있었던 리히텐베르크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요구에서 통일 구호로 바뀌기까지 감동적인 역사와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보는 기획이다.

재미있는 것은 ‘100 Miles Berlin’이란 달리기 행사다. 과거 동독 인권운동가인 라이너 에펠만(Rainer Eppelmann)이 기획한 것으로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이틀 동안 베를린 장벽의 전구간인 100마일(약 160km)을 달리는 익스트림 스포츠 행사다.

‘베를린 장벽 길’(Berliner Mauerweg)이라 명명된 이 길은 과거 동독 국경경비대의 삼엄한 초소가 있고 철조망이 있던 곳인데, 장벽을 넘다가 희생한 장벽 희생자를 기리는 다목적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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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자동차 트라비와 군복 등 냉전상품이 인기다./사진=손관승



베를린 시민과 단체가 참여하는 전시민의 축제가 되고 더 나아가 해외 여행자들에게도 색다른 관광상품이 아닐 수 없다.

동독시절 비밀 경찰 슈타지 요원의 눈으로 바라본 독일영화로 아카데미 국제상을 수상한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그리고 냉전시절 전설적인 스파이들의 교환이 이뤄졌던 글리니케 다리를 무대로 한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미국 영화 ‘스파이 브리지’ 등의 영화는 재개봉 되고 그 영화의 실 무대와 관련된 관광상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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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베를린을 분단하던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는 인기 사진촬영장소다./사진=손관승



공식 비공식 상품 개발도 베를린 장벽과 관련된 것들에 맞춰져 있다. 지금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동독 자동차 트라비를 활용한 시티투어 상품은 인기 만점이다. 신혼여행 커플도 이 자동차를 타고 허니문을 즐길 정도다.

냉전시절 군복과 훈장 등을 파는 사람도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냉전시절 스파이와 정보기관의 세계를 다룬 스파이 박물관도 인기다. 이쯤 되면 ‘장벽 마케팅’, ‘냉전 마케팅’이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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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을 쓴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 앞은 이제 오래 전의 추억을 기념하는 사진찍기 좋은 명소일 뿐이다./사진=손관승



베를린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 도시의 공식 포탈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비가 내리는 날보다 박물관과 갤러리 숫자가 더 많은 도시."

날씨가 나쁘다는 선입견을 그대로 활용한 마케팅 전략이다. 약점도 뒤집으면 훌륭한 강점이 된다는 스토리텔링의 원리 그대로다. 175개의 박물관, 600여 개의 사설 갤러리, 50여 개의 연극 극장, 그리고 3개의 오페라하우스가 있다는 문화와 예술의 경쟁력을 강조한 말이다. 마케팅은 역시 상상력의 힘이다.

이 도시는 약점을 감추지 않는다. 과거의 아픔과 부끄러움까지 드러내고 기억하려 한다. 아니 오히려 자신만의 숨겨진 상처를 당당히 드러낸다. 그것이 베를린의 진정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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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급속도로 변화한 베를린 포츠담광장./사진=손관승



두 번의 세계대전의 참패, 유대인 학살이라는 국제적인 낙인, 동서독 분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은 다시 일어났다.

리더들도 종종 좌절과 시련을 겪는다. 스트레스가 많고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요즘 강조되는 개념이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육체처럼 정신과 영혼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그래야 탄력성이 는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벤치마킹 해야 할 이유다.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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