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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예영준의 직격인터뷰] “북한 식량 위기, 주민들 올해 두 달은 굶어야 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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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 추정치 실제보다 과장됐지만

취약 계층에 아사 발생 우려 있어

모니터링 힘든 직접 지원 보다는

국제기구 통한 맞춤형 지원 해야

북한 식량 연구 20여년 한 우물 판 권태진 박사
중앙일보

북한 농업 및 식량 전문가인 권태진 박사는 ’북한의 식량 부족 통계가 다소 부풀려지긴 했지만 최근 10년간 가장 심각한 수준인 건 틀림없다“며 ’국제기구를 통해 쌀보다는 밀가루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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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북한에 제2의 ‘고난의 행군’ 사태가 오는 것일까. 북한이 10여년 만에 가장 심각한 식량난을 맞고 있다는 보고서를 이달 초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뒤로 쌀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800만 달러(약 95억원)의 인도지원 자금을 국제기구에 보내고, 이와 별도로 직접 식량 지원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적 공론화를 거친다고 했지만 정부는 방향을 정해 놓고 시기를 저울질하는 모양새다. “인도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김연철 통일부 장관)고 하지만 식량지원을 매개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식량 지원을 할 때가 아니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연속 발사 등 저강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압박의 국제 공조 전선을 흩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도주의 지원은 대북 제재의 예외로 인정되지만, 식량 수입에 써야 할 외화를 아껴 다른 곳에 쓸 수 있으므로 결국은 제재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식량난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처럼 주장이 엇갈리고 여론이 양분되면서 식량 지원을 둘러싼 진영 대립의 양상까지 보인다.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 농업과 식량 사정을 연구해 온 권태진(65) 박사를 만난 것은 북한 식량난의 정확한 실상과 해법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30차례 이상 북한을 다녀온 그는 2014년부터 민간 싱크탱크인 GS&J 인스티튜트에서 북한동북아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Q : 폐쇄사회인 북한의 식량 사정을 외부에서 어떻게 분석하나. 북한이 발표한 자료를 그대로 따르는 것 아닌가.

A : “적어도 우리 농촌진흥청의 분석은 그렇지 않다. 농진청은 매년 12월 북한의 작황 추정치를 내놓는데 이는 북한이 통계를 발표하기도 전이다. 지난 20여년간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휴전선 근처에서 최대한 북한과 비슷한 조건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 있다. 북·중 국경 인근 중국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작황을 기본 자료로 삼고 북한 경작지를 위성으로 촬영한 자료를 보태 북한의 생산량을 분석한다. 초기에는 오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신뢰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Q : 최근 발표한 WFP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36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데 농진청 분석과 일치하나.

A : “WFP는 북한 발표를 바탕으로 2주간의 실사를 거쳐 나온 것인데, 북한이 내놓은 숫자에 최대한 맞추려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농진청이 추정한 지난해 북한 곡물 생산량은 455만톤인데 WFP는 북한 통계를 거의 그대로 인용해 417만톤이라 추정했다. 여기서 약 40만톤의 차이가 난다. 또 북한의 식량 수요도 예년에 비해 10만톤가량 높게 잡았다. 결과적으로 식량 부족분을 50만톤 정도 부풀린 게 아닌가 의심을 살 만하다. 내가 추산하기로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량은 90만~100만톤 안팎이다. 그렇더라도 최근 10년 사이 가장 심각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권 원장은 차이가 나는 원인도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2014년 경사진 땅에는 농사를 짓지 말고 조림을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매년 30만톤가량이던 경사지 수확량은 불법경작으로 간주돼 북한 통계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주민들이 과연 경사지에다 나무만 심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농진청 집계는 이런 통계 누락분까지 감안한 것이다. ”



Q : 90만~100만톤이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가.

A :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국가이지만 최근 10여년간 아사자 발생 사태 없이 그럭저럭 버텨왔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생산량이나 수입 물량이 시장(장마당)을 통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는 40만~50만톤 정도가 부족해도 실제로는 버텨왔다. 올해는 그런 점을 감안해도 나머지 부족분 50만톤은 대책이 없다. 주민 전체가 하루에 먹는 게 1만톤가량이므로 계층별·지역별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두 달 가까이 먹을 게 없다는 계산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취약 계층에서는 아사자가 나올 수 있다.”




Q : 식량난인데도 북한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쌀 가격이 오히려 내렸다는데.

A : “공급이 늘어서가 아니라 유효 수요가 감소해 가격이 내려간 것으로 풀이된다. 대북 제재로 경제난이 심각해져 쌀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줄었다는 의미다. 가령 무산광산 종업원은 북한에서 고소득 직군이었는데 대북 제재로 광물 수출이 막히자 가장 어려운 계층이 되어 너도나도 광산을 빠져나오려 아우성이라고 들었다.”




Q : 김정은 집권 이후 할당량을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포전담당책임제’를 확대하는 등의 농업개혁이 있었는데도 식량이 부족한 이유는.

A : “지난해 가뭄·폭염·홍수 등 자연재해가 겹쳤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대북 경제제재다. 연료가 없어 트랙터나 탈곡기를 제대로 못 돌린다. 비료 생산량도 확 줄었다. 원료인 석유화학제품 수입이 막혔고 비료 공장의 노후 설비 수리에 필요한 부품 조달도 힘들다.”


정부가 식량 지원을 확정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까. 권 원장은 “정밀한 타기팅(지원 대상 선별)과 분배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며 “꼭 필요한 품목을 필요한 계층에 필요한 만큼만 지원하는 ‘맞춤형 지원’이 이뤄져야 인도적 지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당국은 쌀을 원하겠지만 이왕 지원할 거라면 쌀이 아닌 밀가루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돈으로 밀가루를 보내면 쌀보다 두 배 가까운 양을 보낼 수 있어 더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다. 지난해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식량도 대부분 밀가루였다. 보관 기간도 6개월 미만으로 짧기 때문에 쌀처럼 군량미로 비축될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Q : 과거 대북 지원과 감시 활동에도 여러 차례 참여한 것으로 안다. 과연 제대로 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나.

A : “과거의 사례로 볼 때 우리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물량은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하도록 북한이 용인하지도 않거니와 우리 정부도 별로 의지가 없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오래 활동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WFP나 아동 지원에 집중하는 유니세프는 다르다. 아동·노약자·임산부·취약계층을 선별하는 타기팅과 그들에게 특화된 영양지원 및 분배 모니터링을 우리보다 훨씬 까다롭게 요구하고 북한에서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다.”




Q : 일례를 든다면.

A : “가령 보육원에 지원할 때는 어린이의 영양 발달에 필요한 성분을 배합한 곡물가루를 보내거나 비스킷·빵을 만들어 준다. 그러면 지원 물자가 다른 곳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줄어든다. 하지만 과거 우리 정부의 지원은 ‘쌀을 트럭에 실어 보낼 테니 알아서 가져가라’는 식에 가까웠다. 앞으로 직접 지원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런 방식이 되면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것이다.”




Q : 만성적인 북한 식량난 해법은 뭔가.

A : “농업 전문가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북한은 농업에만 의존하면 결코 살 수 없다. 천연자원과 인적 자원이 있으니 제조업으로 돌파구를 찾고 부족한 식량은 수입으로 해결하면 된다. 옆에 중국이란 거대 시장이 있지 않은가. 빨리 핵을 내려놓고 개방하고 경제 개발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할 때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권태진 원장
1980년 서울대 농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재직 중이던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 농업과 식량 문제를 연구해 왔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30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해 농촌 곳곳을 살펴봤다. 2014년 민간 싱크탱크인 GS&J로 옮겨 북한 농업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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