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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사설] ILO협약 비준 서두르는 정부, 경영계 요구는 왜 묵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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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협약 가운데 3개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9월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뜻도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선 입법, 후 비준'이라는 원칙 아래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지난해 7월부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맡겼다. 지난 20일 경사노위 논의가 최종 결렬되자 이제 국회에 비준동의안과 법률개정안을 넘기겠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도 경영계와 노동계 요구는 균형되게 반영돼야 할 것이다.

정부가 비준 절차를 밟으려는 협약은 노조 결성, 단체교섭 등에서 노동조합의 권리를 확대하고 보장하는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를 담은 제29호다. 유럽연합(EU)은 한·EU FTA를 근거로 우리나라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압박하고 있으며 자칫 통상마찰로 비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가 무작정 ILO 핵심협약 비준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다만 ILO 협약 비준을 통해 '노조할 권리'가 강화되면 그에 맞춰 사용자 방어권도 국제 수준으로 보완하는 것이 정상이다.

ILO 핵심협약을 적용하면 소방공무원과 5급 이상 공무원뿐 아니라 해고자·실직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도 허용되고 전교조도 합법화된다. 경사노위는 지난해 11월 이처럼 노동계 권익을 강화하는 내용을 반영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 이어 2단계로 경영계가 요구하는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논의하려 했으나 노동계 반발로 파행하다가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ILO 핵심협약은 국내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들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은 채 국회에서 ILO 협약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비준동의안 처리에 앞서 이 협약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 개정부터 논의하는 게 순서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노조할 권리'와 마찬가지로 사용자 방어권도 국제 수준으로 보장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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