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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정상 간 통화 공개해놓고 알권리라는 한국당의 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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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9일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은 강 의원의 고교 후배인 외교부 직원이 누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주미대사관에 근무 중인) 현직 외교관이 대외 공개가 불가한 3급 국가기밀로 분류된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으로 감찰 결과 확인됐고, 본인도 기밀 누설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폭로된 내용은 이 정권의 굴욕 외교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 성격”이라고 했다. 폭로 당사자인 강 의원도 “청와대의 공무원 감찰은 공직사회를 겁박하고 야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화 내용 폭로가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궤변이다.

국가 정상 간 대화 내용은 공개될 경우 양국 간 신뢰를 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년 뒤에 공개하는 일도 있다. 따라서 현직 외교관이 기밀을 누설한 것은 두둔할 여지가 없는 불법행위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공익제보나 시민의 알권리를 위한 폭로는 은폐되는 내부의 부정·비리를 바깥에 알림으로써 공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 간 통화 내용은 부정한 내용도 비리도 아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 미국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하는 대화가 어째서 시민이 속속들이 알아야 할 일이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죽하면 한국당 소속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의원마저 “어느 때보다 한·미관계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민감한 시기에 국익을 해치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며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비판했을까. 한국당은 과거 여당 시절 외교안보 사안에는 초당적 태도로 접근하라고 야당에 요구했다. 그에 배치되는 일을 해놓고도 공익제보 운운하는 것은 시민들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국익은 뒤로한 채 문재인 정부 비판에만 급급한 강 의원의 국회의원 자질이 의심된다.

한국당이 기밀 유출 외교관의 휴대전화 감찰 조사에 시비를 거는 것도 억지다. 국가 기밀이 유출됐다면 보안유지를 위해 조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휴대전화 감찰은 해당자의 동의하에 실시되는 것으로 불법이 아니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해당자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외교부의 허술한 정보관리 체계도 점검해야 한다. 강 의원 역시 당리당략을 앞세워 대화 내용을 무분별하게 공개한 데 대해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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