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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교육 신뢰 떨어지고 공정성 의심"…숙명여고 前교무부장 1심 징역 3년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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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없는 아빠의 야근, 딸들의 ‘깨알 같은 메모’
답안 유출 정황으로 판단…"유출 정답 암기한듯"
풀이 없이 정답… "상식 뛰어넘는 천재? 아니다"

조선일보

자신의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정답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서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씨(앞쪽)가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며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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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숙명여고 시험유출'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모(52)씨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23일 현씨의 업무방해 혐의 선고공판을 열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현씨의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현씨의 쌍둥이 딸이 성적이 급격히 상승한 데에는 현씨가 답안을 미리 유출한 것 외에는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 봤다. 정정된 정답이 없을 경우 두 딸의 성적이 만점에 가까웠지만, 정정된 정답이 있을 경우 틀린 것도 답안이 유출된 근거로 봤다. 정답이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시기에 현씨가 초과근무를 하고도 별도로 업무일지에 기재하지 않았고, 금고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는 점도 현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두 딸 모두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둔 내신 성적과 달리, 모의고사 성적은 오르지 않은 점, 큰 딸과 작은 딸 모두 시험지 한 켠에 유달리 작은 글씨로 숫자를 적어둔 것도 유출 정황이 의심되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작은 딸이 물리 시험에서 특별한 풀이 없이 암산으로 문제를 풀었다는 것에 대해 "이례적"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 판사는 "몰라서 틀리기보다는 실수로 틀리는 상위권 학생으로서는 오류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풀이과정을 어느정도 적어야 한다"며 "(암산으로 푼 이유로 꼽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은 (작은 딸이)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천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는 풀이과정을 기재했고, 이 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지도 않았다"며 "쉬운 문제에는 풀이과정을 쓰고, 어려운 문제에는 쓰지 않았다. 작은 딸이 천재일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해도 과언이 아니고, 유출한 정답을 암기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 판사는 "현씨의 두 딸이 4번에 걸쳐 사전 유출된 정답을 암기한 사실과, 그 결과 성적이 대폭 상승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정답을 사전에 입수했다고 볼 이상, 현씨를 통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현씨는 교무부장이라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앞서 말한 두 방법으로 시험 직전에 출제서류를 확인하고 유출한 다음, 답안을 쌍둥이 딸들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씨와 쌍둥이 딸들이 공모한 혐의도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현씨의 범행은 2개 학기 이상의 기간동안 은밀하게 이뤄졌다"며 "범행으로 인해 숙명여고가 받은 업무방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했다. 또 "중요한 절차로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고 공정성에도 관심이 높은 고교 정기고사 성적과 관련해 숙명여고 뿐만 아니라 다른학교도 공정성에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교육의 신뢰가 떨어진 것은 물론 다른 교사들의 사기도 떨어졌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다만 교육방침에 의해 고교 시험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그것을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은 미처 갖춰지지 않았던 것도 이 사건의 원인으로 보인다"며 "현씨의 두 딸이 숙명여고 학적을 잃게되고 일상생활을 잃어버리는 등 현씨가 가장 원하지 않았을 결과가 발생했고,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현씨는 선고 이후 한숨을 내신 뒤 상심한 표정으로 재판부에 목례를 하고 경위에 이끌려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날 재판에는 숙명여고 졸업생과 행정실 직원 등도 방청석에 앉아 선고를 지켜봤다.

현씨는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쌍둥이 자매가 다니는 학교의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며 시험 답안을 유출해 학교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최상위 성적이 아닌 두 딸이 나란히 문·이과에서 각각 전교 1등을 하며 숙명여고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숙명여고 측은 지난해 11월 쌍둥이 자매의 성적을 0점으로 재산정하고 퇴학 처리했다. 현씨는 징계위원회와 재심의를 거쳐 파면 처분이 내려졌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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