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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재용 지배력 강화 위해 콜옵션 은폐 이어 ‘새사업 뻥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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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

회계법인 부실 보고서에 바탕

삼성·두 회계법인 ‘한몸’처럼

삼성물산쪽 대리한 안진 회계는

제일모직 자료대로 과대평가

에버랜드 동식물 활용 바이오사업

제일모직 아닌 미전실 작품 의혹

국민연금 직원, 박영수특검 조사서

“제일모직 IR 담당자도 내용 몰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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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바이오’라는 유령사업까지 동원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무리하게 끌어올리려 한 까닭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 일가의 지분 구조상 ‘삼성물산 가치는 박하게, 제일모직은 후하게’ 평가될수록 이 부회장에게 유리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콜옵션 부채를 은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병 추진 당시 가장 논란이 일었던 대목은 적정 합병비율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상장회사였기 때문에 합병비율은 법률이 정한 주가에 따라 산정됐다. 그러나 합병을 반대하는 쪽은 그 비율(1:0.35)이 적정 회사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이런 반대 논리를 돌파할 필요가 있었고, 그 방안 중 하나로 공정성의 외관을 확보할 수 있는 딜로이트안진(안진)과 삼정케이피엠지(삼정)에 평가를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두 회계법인의 보고서는 합병을 관철하는 데 주요하게 활용됐다.

그러나 <한겨레>가 입수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두 회계법인이 삼성 쪽과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선 안진은 의뢰인인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제일모직을 평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를 위해선 상대 기업인 제일모직의 자산, 사업성, 미래가치 등이 과대평가되지 않도록 엄격한 실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그 단적인 예가 실체조차 없던 제일모직바이오의 영업가치를 3조원으로 평가한 것이다. 안진은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물론 추진 일정, 매출액 산정 근거 등을 따지지 않은 채 제일모직이 제시한 자료만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했다. 김경율 회계사는 “안진이나 삼정이 거대 고객인 삼성의 뜻을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실상 삼성이 준 숫자를 끼워 넣은 보고서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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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계법인의 보고서가 ‘주문 생산형’이었음을 드러내는 내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분식회계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 평가도 짜맞춘 듯 같은 방식을 썼다. 여러 증권사 리포트의 평가액을 더해 나온 단순 평균값을 적용하는 방식은 대형 회계법인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11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한 해 동안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외부 기업평가 보고서 25건을 확인한 결과, 증권사 리포트 평균값을 적용한 보고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심지어 ‘에버랜드의 동식물을 이용한 바이오사업’이라는 구상을 제일모직이 아닌 합병을 지휘한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만든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시 이 사업 내용을 제일모직 내부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정황이 과거 박영수 특별검사팀 조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아무개 국민연금 연구원은 “2015년 6월 안진과 삼정의 보고서를 건네받고, 제일모직바이오 사업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하려고 제일모직 아이아르(IR) 담당자에게 문의했더니 담당자도 내용을 모르고 있었고,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어와 ‘삼성에버랜드에서 보유한 동식물을 이용한 바이오 신사업을 구상 중이다’라고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결국 삼성은 회계법인의 ‘부실 보고서’를 합병 성사에 활용함으로써 제일모직 주식 23.2%를 보유하고 있던 이 부회장은 이 합병으로 삼성전자 지분 4.1%를 가진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공고히 했다. 그러나 삼성이 존재하지도 않는 사업을 내세워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부풀린 사실이 드러난 만큼 합병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질 전망이다. 또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재판과 검찰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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