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승리 후 '좌파·반미 대통령'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당선인 신분으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를 찾아가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미국 인사들을 만날 때는 자신을 '요구가 많은 친미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한미동맹과 국가안보를 중시한 것이다. 임기 중 이라크 파병을 단행하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인 것도 그런 연장선상이다. 남북관계와 동북아 문제를 풀려면 친미, 친북, 친중, 친일, 친러도 다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그는 경제 실익 추구에도 앞장섰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당시 지지층이 "망국의 길"이라며 반대했지만 '장사꾼 논리'를 내세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2005년 규제개혁 추진보고회의에선 "시간이 참 많이 걸린다"며 신속한 규제개혁을 주문하기도 했다. 당시 수도권 규제를 풀어 경기 파주에 LG필립스 공장(현 LG디스플레이)을 짓게 한 것은 규제 타파의 대표적 사례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세력의 비판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다독였다. 국익을 위해선 좌파정책이든 우파정책이든 개의치 않고 시행해야 한다는 그의 국정철학은 "참여정부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좌파 신자유정부"라고 밝힌 데서 잘 드러나 있다.
참여정부 때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실용노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북 지원과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정책에서 보듯이 실용보다는 이념에 치우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가 내민 '촛불 청구서'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정 최고지도자는 지지층 이탈을 감수하고서라도 국익과 미래를 위해 외로운 용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실용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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