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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타인 정자로 낳은 아이` 친자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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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의식의 변화와 의학기술의 발달 등의 영향으로 과거 친생추정 법리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안성용 법무법인 광안 변호사)

"혈연관계가 아니란 이유로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2일 친생추정 예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친생추정 제도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민법상 규정을 말한다.

이날 변론은 송 모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 사건이 대상이었다. '부부 간 동의에 따라 타인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자녀'와 '동거 중인 아내가 낳은 혼외 자녀'를 친생자로 인정하는 게 법리적으로 타당한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송씨는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타인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을 시도해 1993년 첫째 아이를 낳았다. 1997년에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무정자증이 치유됐다고 생각하고 친생자로 출생신고를 했지만 2013년 이혼소송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됐고 자녀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앞서 1·2심은 "무정자증 진단만으로 부인이 남편의 자식을 임신할 수 없는 명백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각하했다.

민법 제844조는 △혼인 중 임신 자녀 △혼인 성립 200일 후 출생 자녀 △이혼 후 300일 이내 출생 자녀를 남편의 친자로 보고 있다. 다만 1983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별거 중이어서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출산할 수 없는 사정이 명백할 땐 친생추정 예외를 적용한다. 이 같은 제도에 대해 그동안 학계 등에선 "유전자검사가 활성화됐고 인공수정 같은 새로운 임신·출산 형태가 나타나면서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날 안성용 법무법인 광안 변호사는 원고 측 대리인으로 나와 "제3자의 정자나 아내의 부정으로 혼외자가 밝혀진 경우, 자녀가 이미 성인이 됐거나 생부가 양육 가능해 복리에 문제가 없는 경우, 이혼이나 별거로 이미 가정이 파탄이 나서 가정 보호라는 법익이 없어진 경우에는 친생추정 예외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참고인인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학기술 발달로 유전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친생추정을 과학적·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유전자형 배치(背馳)를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부부가 동거 중이더라도 타인 정자를 통한 인공수정, 혼외자 임신·출산은 유전적으로 남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피고 측 대리인인 최유진 법무법인 성진 변호사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도 혼인 중 임신한 자녀가 명백하기 때문에 (남편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외 범위를 넓히면) DNA 검사 등을 통해 친자 관계가 부정되고 결국에는 보호 대상인 자녀의 신분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부부관계가 파탄이 나더라도 그것은 가정 보호 대상인 자녀의 귀책 사유가 아니다"고 했다. 피고 측 참고인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편에게 '혈연관계가 없다'며 친자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권리가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면 자녀는 같이 살아왔던 아버지로부터 느닷없이 관계가 부인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송광섭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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