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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타인 정자로 인공수정’ 누구의 자식인가…대법 공개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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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the L] "가족의 불행 지속되면 안 돼" vs "자녀 신분 불안정해져"

머니투데이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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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자증으로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태어난 자녀를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열어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정에서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달라고 낸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부인 B씨와 1985년 결혼했지만 무정자증으로 자녀가 생기지 않았다. 이에 다른 사람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시술을 통해 1993년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이번에도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2013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해당 사건이 우리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DNA) 검사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현행 민법에 따르면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된다.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는 '친생부인의 소'가 있다. 대법원은 1983년 이후 부부가 동거하지 않아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다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해왔다.

학계에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친생자관계 입증의 어려움이 개선됐고 사회인식 변화와 인공수정 등에 의한 임신·출산이 늘어나는 만큼 친생추정 예외 범위를 좀 더 넓게 보자는 절충적 견해와 이미 형성된 친자관계를 중시하는 기존 법리가 대립하고 있다.

이날 원고 측은 “친생부인의 소는 제척기간 2년이 지나면 어떤 경우에도 제기할 수 없다"며 "의학·과학기술 발달로 진실한 혈연관계 판단이 손쉽게 됐는데도 친자관계를 지속시키는 건 가족 구성원 복리와 가정 평화의 법익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불행한 가족관계를 지속하게 해 매우 불합리하다"면서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에 대한 예외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 측은 원고가 제3자 인공수정 출산에 동의했다가 변심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금반언의 원칙(한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원칙)에 반하는 사정까지 인정하면 사회적 공감대에 반한다"며 ”친자추정의 예외를 확대하면 자녀는 혼외출생자로 신분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은 변론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심리해 3~6개월 안에 결론을 낼 방침이다.

앞서 1심 법원은 원고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정 외에 '동거의 결여' 등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되고, 이런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보고 각하 판결을 내렸다. 또 1심 법원은 이번 소송을 만약 '친생부인의 소'로 보더라도 제척기간인 ‘안 때부터 2년’이 지났으므로 부적법해 각하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본안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배우자가 동의한 경우’에는 친생자로 추정되는 원칙이 유지되지만, 유전자형이 다른 경우에는 친생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심 법원은 A씨와 두 아이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지만, 첫째 아이에 대해서는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A씨가 동의했기 때문에 소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둘째 아이에 대해서는 친생자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나,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어 양친자관계가 성립해 소의 이익이 없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mk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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