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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돌보러 방문요양 왔는데…“밭을 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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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1부 돌봄orz ④재가요양의 그림자

〈한겨레〉 방문요양사 14명 심층면접, 216명 설문조사

노인과 그 가족들이 허드렛일·욕설·성폭력까지…

“사람 바꿔달라” 한마디면 교체…34만명 고용불안

요양보호사 83%가 ‘방문요양’…멸시 견디며 일해

“나 아니면 누가 돌보나” 마지막까지 노인 곁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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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739만명이다. 노인 인구는 2025년 1천만명을 넘고, 2035년에는 1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추정 치매 환자 수는 75만명 정도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해 노인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 어렵고,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집에서 재가방문요양보호사(방문요양보호사)들에게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는다. 올해 3월 현재 15만6435명이 요양원을, 41만930명이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방문요양보호사들은 요양원 등 시설 종사자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노인의 집이 일터다. ‘원장님’이 아니라 노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다. <한겨레>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방문요양보호사 14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또 21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와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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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요양보호사인 51살 박미순(가명)은 10개월째 자기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박미순은 지난해 7월 경남의 한 농촌 마을에 있는, 여든이 훌쩍 넘은 강옥순(가명) 할머니의 집에 배치됐다. 방문요양보호사는 방문요양센터(센터)에서 정해주는 집에 방문해 일정 시간 요양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옥순 할머니가 원한 건 요양 돌봄 서비스가 아니었다. 옥순 할머니 집에 방문한 첫날, 할머니는 박미순의 손을 이끌고 2975㎡(900평) 밭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밭에서 나온 토란대 한 무더기를 던져주더니 껍질을 까라고 했다. “나는 팔이 아파서 못 깐데이.”

박미순은 얼떨결에 토란대를 들고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까도 까도 토란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반복하자니 손가락 끝은 거뭇해졌다. 토란대에서 나온 진액에서 독이 올랐는지 손이 간질간질했다. “장갑이라도 끼라고 좀 말씀해주시지.” 박미순은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옥순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꾼 다그치듯 연신 훈수만 뒀다. “아이고 답답해라, 마. 빨리빨리 좀 야무지게 몬 하나.”

박미순이 돌봄 노동을 할라치면 옥순 할머니가 차단했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과 냄비가 눈에 들어와 그릇을 집어 들자 옥순 할머니는 뾰족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설거지하면 돈이 나오나? 청소하면 돈이 나오나?” 옥순 할머니는 박미순에게 농사일을 시키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텃밭이었으면 ‘그냥 하고 말지’ 했을 거예요. 6개월을 일했는데 끝나는 그날까지 밭에서 일했어요. 그건 분명히 농사였어요.” 박미순은 억울해선지 ‘농사’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주었다.

박미순은 20년 전부터 귀농을 꿈꾸긴 했다. 하지만 장사가 잘되는 도시 한가운데 치킨집을 접고 아무 대책 없이 귀농할 순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두 아들이 입대와 기숙 고등학교 입학으로 독립 아닌 독립을 하자, 치킨집을 내놓고 귀농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늘 꿈꾸던 것이었지만, 문제는 생계였다. 땅도 경험도 지식도 없이 농사를 지을 순 없었다. 박미순이 가진 건 10년 전쯤 따뒀던 요양보호사 자격증뿐이었다. 친할머니와 오래 살았고, 결혼한 뒤에도 시할머니의 예쁨을 받았던 경험도 박미순의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방문요양보호사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박미순은 얄궂게도 타의에 의해 농사를 지어야 했다. 시골 노인들은 식사를 차려주고, 집을 치워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것보다 오로지 농사만 돕길 원했다. 박미순은 어떻게 하면 어르신을 잘 돌볼 수 있을까 고민하며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박미순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노인의 손이 아니라 호미나 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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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아니라 막일을 하는 요양보호사들


요양보호사 10명 중 8명은 노인의 집을 직접 찾아가 돌보는 방문요양에 종사한다. 방문요양보호사는 올해 3월 현재 34만6149명으로, 전체 요양보호사 41만5621명 가운데 83.2%다.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6만9472명)보다 5배 가까이 많다. 이들은 방문요양센터에서 연결해주는 노인 수급자를 맡아 돌본다. 인력사무소와 비슷한 구조다. 센터의 벌이는 요양보호사가 노인을 몇 시간 돌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노인을 돌본 시간만큼 국민건강보험공단(85%)의 돈과 노인의 자기부담금(15%)으로 구성된 급여 비용을 받는다. 1시간은 2만1690원, 2시간은 3만6720원, 3시간은 4만6130원이다.

노인은 자신을 돌볼 센터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센터들의 수급자 노인 유치 경쟁이 벌어진다. 자기부담금을 면제해준다며 모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때로는 이런 ‘모객’이 요양보호사들에게 맡겨지고,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자기부담금을 대신 내주며 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요양원 등 시설에서는 시설장이 ‘갑’이라면 방문요양에서는 수급자 노인이 ‘갑’이다. 노인이나 가족이 요양보호사가 소속된 센터에 “사람을 바꿔달라” 한마디만 하면 요양보호사는 즉시 ‘해고’된다. 방문요양보호사를 가욋일과 허드렛일로 몰아세우는 구조는 여기서 비롯한다.

도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하미정(가명·55)은 광주에서 일하고 있는 방문요양보호사다. 4년 전 맡았던 70대 할머니는 오전 9시 집으로 출근한 하미정에게 옆 골목을 돌며 “폐지를 주워 오라”고 했다. “그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어르신.” 하미정은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꾹꾹 누르고 차분히 설명했다. 할머니는 굴하지 않았다. “그럼 갖다가 팔기라도 해!” 그것도 안 된다고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내 집에 일을 왔으니까 내가 하는 일을 해줘야제. 그라지 않으면 우리 집에 올 필요가 없지.” 하지 않을 거면 나오지 말라는 통보였다. 하미정은 어쩔 수 없이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할머니와 함께 손수레를 밀어야 했다. 방문요양으로 주어진 3시간 내내 그것만 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어요. ‘내가 이 일 하러 요양보호사가 된 게 아닌데 왜 폐지 파는 일까지 다 해줘야 하나. 나는 케어하러 온 건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결국 하미정은 한달 정도 참고 일하다 다른 요양보호사로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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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의 불안정 노동을 착취하는 시스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을 보면, 방문요양보호사는 △수급자의 가족을 위한 행위 △수급자 또는 그 가족의 생업을 지원하는 행위 △그 밖에 수급자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행위를 제공하거나 받아선 안 된다고 적혀 있다. 노인 가족의 밥과 반찬을 하거나 온 집안을 대청소하는 일은 요양보호사의 역할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모든 원칙은 “다른 아줌마로 바꿀 거야”라는 말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이는 공공의 업무를 중년 여성들의 불안정 노동에 맡겨두고, 이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통해 비용을 절감해 노인 요양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이다.

평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국가의 보호막이라는 것을 누려본 적 없이 생존경쟁 속에 버텨온 노인들은 이 구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 노인들은 자신의 불안정했던 삶에 대한 보상을 다른 약자를 착취하는 걸로 보상받으려 한다. “‘너 나 때문에 벌어먹고 살잖아’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이 말에 대꾸했다가는 하루아침에 벌이가 반 토막 날 수도 있죠. 보험료에 애들 학원비에 각종 이자까지…. 돈 들어가는 곳은 정해져 있는데 버는 돈이 줄어들면 살 수가 없잖아요. 무시하는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어요.” 광주에서 일하는 방문요양보호사 차연수(가명·54)의 말이다.

<한겨레>가 방문요양보호사 21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해진 일 이외에 어떤 일을 하냐’(복수응답)는 질문에 ‘집안 대청소’라는 응답이 60%(130명)로 가장 많았다. ‘이용자 이외 가족의 식사와 반찬 마련’이라는 응답 역시 53%(114명)로 절반을 넘겼다. 김장을 한 적이 있는 요양보호사는 32%(69명), 제사 음식을 준비한 경험이 있는 이는 18%(38명)였다. 한 요양보호사는 ‘닭을 키우고 닭장 정리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고 답했다. 그렇게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은 노인의 자녀들이 가져갔다.

방문요양에선 노인들의 가족도 요양보호사의 ‘갑’이 된다. 충북 청주에 사는 방문요양보호사 추정미(가명·49)가 새 ‘어르신’을 맡은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빼곡한 글씨로 가득 찬 화이트보드가 거실에서 추정미를 맞았다. ‘오늘은 시간 되는 대로 1. 가스레인지 후드랑 주변 청소 2. 강아지가 오줌 싼 카펫 닦기(탈수통에 물과 락스 넣어서 대걸레 빨아서) 3. 싱크대 서랍과 냉장고 야채칸 종이 교체(달력 종이로)’라고 적혀 있었다. 아들이 추정미에게 써놓은 지시 사항이었다. 추정미는 헛웃음만 나왔다. “하기 싫어요? 그럼 하지 마세요. 일할 사람 널렸는데.” 아들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한 뒤 휴대전화를 들었다. “센터 바꾸려고요.” 이 말 한마디에 전화기 너머로 센터 원장의 절절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정미는 그날 바로 잘렸다.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수급자나 가족이 정해진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시켰을 때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질문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참고 넘어갔다’는 응답이 52%를 차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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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를 참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국가가 불안정 노동을 유발해 중년 여성들을 약자로 만드니, 수급자 노인과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멸시한다. <한겨레> 설문에서 노인과 가족에게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는 방문요양보호사는 32%(70명)였다.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10%(21명)나 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대비해 읽은 수험서에는 노인들을 인간답게 돕는 방법이 가득하다. 한쪽에만 마비나 장애가 있는 경우 옷은 건강한 쪽부터 벗기고, 불편한 쪽부터 입혀야 한다. 욕창을 막기 위해 몸이 배길 수 있는 단추나 지퍼는 매직테이프로 바꿔줘야 한다. 옷의 구김도 욕창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경 써서 펴야 한다. 국은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조리해야 목 넘김이 편하다. 치매를 앓는 노인에게는 ‘저를 알아보시겠어요?’와 같이 기억력을 시험하는 대화나 명령조로 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페이지에도 요양보호사가 모멸을 견디는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성희롱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노인에게 직접 말하거나 센터에 이야기하라는 비현실적인 대응법만 무성의하게 적혀 있다. “○○년아” “○ 같은 년.” 강원도에서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오수진(가명·58)은 노인의 욕설이 듣기 싫을 때 설거지를 한다. 물을 틀어 놓고 “저 사람은 아프다. 저 사람은 아프다”를 ‘관세음보살’처럼 되뇐다. 이미 10명이 훌쩍 넘는 요양보호사들이 이 집에 왔다가 나가떨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여러 차례 말한 끝에 침을 뱉은 휴지를 던지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다만 꼬집고, 깨물고, 머리를 쥐어뜯는 일은 여전하다. 오수진은 그럼에도 ‘나 아니면 누가 저 노인을 돌보겠나’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고 했다.

집안의 모든 나쁜 일을 요양보호사에게 탓하는 노인도 있다. “망할 년이 아침부터 남의 집에 들어와서 우리 아들이 또 밥을 안 먹고 나갔잖아.” 경남의 성민주(가명·60)는 수급자 할머니 아들이 밥을 거를 때마다 욕설을 들었다. “여자가 아침 일찍 남의 집에 드나들어 아들이 밥을 안 먹는다는 거예요. 저는 어르신 때문에 가는 건데….”

도둑 취급도 예사다. 경남의 방문요양보호사 김민정(가명·45)이 86살 치매 할머니를 돌본 지 2개월쯤 됐을 때다. 어느 날 할머니가 서랍에 넣어둔 돈 20만원이 없어졌다고 했다. 할머니가 쓰는 공간이야 뻔했다. 함께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다 찾아봤는데 없대도! 집에 온 사람도 따로 없고!” 김민정은 순간 깨달았다. ‘나를 도둑으로 의심하고 있구나.’ 김민정은 방 한쪽에 주저앉아 버렸다. 며칠 뒤 20만원은 할머니의 베개 밑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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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요양보호사 37% “성희롱 경험했다”


심각한 문제는 착취 구조를 넘어선다. 가장 끔찍한 건 성폭력이다. 차연수는 5년 전 그 일을 겪은 뒤 다시는 남성 노인을 맡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비슷한 연배가 좋은데 아쉽네. 친구처럼 지내고 싶고 드라이브도 하고 싶은데….” “다방 여자한테는 얼마만 주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 차연수는 새로 돌보게 된 노인이 불쑥불쑥 던지는 말이 불편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노인은 더 노골적이 됐다. 어느 날 욕실에서 목욕하던 할아버지가 “여기 때가 있는데 힘이 없어서 못 밀겄다”고 했다. 등을 밀어달라는 일은 예전에도 가끔 있었다. 차연수는 별생각 없이 등의 때를 밀어주고 욕실을 나섰다. 조금 뒤, 할아버지는 다시 부르더니 이번에는 몸 앞쪽 아래도 밀어 달라고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도 선명했다. 집 안에는 둘뿐이었다. ‘휴대전화를 어디 놔뒀더라?’ ‘소리를 지르면 다른 집에 들릴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정색하고 자리를 뜨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태연한 척 웃으며 대꾸했다. “아유, 그건 제가 감당이 안 돼요, 어르신.” 목욕탕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며칠 뒤 차연수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방문요양보호사 안순희(가명·55)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할아버지가 텔레비전 앞으로 안순희를 부르며 말했다. “너 이런 거 보냐?” 화면에서는 성인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옆에 다가와 앉으라며 안순희를 잡아당겼다. 안순희는 당장 집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퇴근을 증명하는 ‘태그’를 찍으려면 1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할 일이 많다며 부엌으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안순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노인뿐만이 아니다. “어르신과 방 안에 있는데 아들이 들어와서 옆에 눕더니 나를 발로 툭툭 차면서 ‘너 내가 따먹으면 어쩌려고 이러고 있냐’라고 하더라.” 김민정의 말이다. <한겨레> 설문에서 ‘노인이나 가족이 성희롱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7%(81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1%(66명)는 ‘노인과 가족이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한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면, 노동자가 성적 굴욕감, 혐오감을 느껴 고충 해소를 요청할 경우 사업주는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등 가능한 조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센터는 요양보호사를 지켜주지 않는다. 하미정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센터에 말했지만, 오히려 해고됐다. “센터에다 노인에게 성희롱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른 센터로 갈까봐 그렇게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원장이 경고하기는커녕 노인을 달래려고 요양보호사를 바꿔주겠다고 한 뒤 밥까지 사 먹였다고 해요. 결국 저만 일을 그만뒀죠.” 광주의 방문요양보호사 우순희(가명·62)는 “성희롱하는 노인보다 센터에 더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새로 배정된 노인에게서 ‘홀랑 벗고 맨몸으로 방을 닦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황당해서 센터에 이야기했더니 원장이랑 사회복지사가 ‘선생님한테도 그랬냐’며 마주 보며 웃더라고요. 그 집에서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됐는데 저로 사람만 바꿔줬단 이야기죠.” 폭력을 고발해도 가해자는 온전하고, 피해자만 교체되면서 하나씩 늘어가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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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지킨다


이런 착취와 폭력 구조에도 방문요양보호사 34만명은 노인들의 마지막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꿋꿋하다. 하지만 이들이 노인들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명절과 같은 연휴 때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 “우리가 안 가니까요. 안 가고 싶어서 안 가는 게 아니라 센터에서 빨간 날 일하면 150% 일당을 줘야 하니까 가지 말라고 해요. 그렇게 혼자 2~3일 동안 스스로 뭘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어요.” 하미정의 말이다.

우순희도 직접 그런 일을 경험했다. “명절이 지나면 문 열기가 무서워요. 제가 돌봤던 한 분은 지난해 추석에 화장실에서 물을 졸졸 틀어 놓은 채 돌아가셨어요. 심장마비로….” 언제 다치거나 세상을 떠날지 모를 노인의 삶을 지켜내는 책임은 크지만, 이 정도로 곳곳에서 열악한 처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문득 이 일이 소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고, 요양보호사들은 말했다.

“사람들이 딸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울었어요.” 오수진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수진은 5년 전 뇌출혈로 마비가 와 18년 동안 누워 있던 할머니를 모신 적이 있다. 할머니는 오수진은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들, 딸 아홉보다 곁을 지키는 오수진을 더 신뢰했다. “선생님, 우리 같이 밥 먹어. 선생님이 밥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어”라고 챙겨주고 “이거 비밀인데, 내가 모은 돈이 이만큼이야” 말하며 용돈으로 5만원, 10만원 주기도 했다. 오수진도 그 마음이 고마워 성심을 다해 할머니를 보살폈다. 하지만 이별은 필연이었다. 2015년 2월 오랫동안 돌보던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선생님, 선생님’을 외쳤어요. 그동안 어머니를 잘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00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인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아들이 찾아와 오수진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오수진은 일이 고될 때마다 할머니의 유언이 된 부름을 생각한다고 했다. 삶이 끝나는 순간 호명하는 마지막 이름이 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수급자들의 마음을 연 경험은 천금을 주고도 바꾸기 어려운 보람이다. 부천의 방문요양보호사 허명순(가명·54)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년 동안 여섯번이나 요양보호사를 바꾼 할머니를 맡았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이유를 알게 됐다. 집에 가도 본체만체하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허명순이 자기 뜻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것도 모르냐”는 타박이 날아왔다. 할머니는 다리를 전혀 쓰지 못했고, 몸무게도 100㎏ 가까이 됐다. 휠체어라곤 인형을 앉혀 밀어본 실습 경험만 있던 ‘초짜’ 요양보호사 허명순은 할머니를 산책시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석달이 흘렀다. 어느 날 출근길에 ‘오늘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할머니를 그만 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심을 하자 마음이 후련해졌고, 평소 하지 않던 농담도 자연스레 나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던 때. 무언가 느꼈는지 할머니가 갑자기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꺼냈다. “고맙다. 가다가 과자 사 먹어라.”

그날 이후 할머니는 허명순이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장이 선다는데 한번 가보자”고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꺼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울면서 “바깥에 나가고 싶어도 너 아니면 못 나간다”며 허명순에게 안겼다. 그렇게 허명순은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1년 반을 더 할머니와 함께했다.

충북 청주의 방문요양보호사 강성주(가명·59)는 “‘우리 딸보다 낫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 줘”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방문요양보호사들은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오늘도 어르신들의 방문을 두드린다.

문제는 중년 여성들의 이런 선의에 기대 노인 요양보호 시스템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솔직히 일은 재미있고 보람도 있어요. 하지만 남편은 지금도 못 하게 해요. 자식들도 자기 부모 안 모시는 시대인데, 생판 모르는 사람을 모시는 게 얼마나 어렵겠냐는 거죠. 그 말도 틀린 건 없어요. 국가도, 센터도, 요양보호사를 책임지지 않아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차연수의 깊은 한숨은 이 모든 모순을 담고 짙게 가라앉았다.

이주빈 정환봉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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