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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복잡한 임상시험 맡기세요"…CRO 신산업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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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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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복잡한 임상시험을 대신해주는 임상시험대행업체(CRO) 사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나선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크게 늘면서 임상 수요 역시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국내 CRO 시장은 2014년 이후 연평균 11.7%씩 성장해 2017년 현재 4300억원 규모로 덩치가 커졌다. 이 같은 성장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시장 규모는 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설리번은 전 세계 CRO 시장 규모가 2016년 354억달러(약 41조원)에서 2021년에는 646억달러(약 75조원)로 두 배 가까이 큰 폭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CRO 산업이 급팽창하는 배경에는 바이오 산업이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면서 가파르게 늘어나는 신생 바이오벤처가 자리 잡고 있다. 신생 바이오벤처는 효능이 탁월한 원천물질을 갖고 있더라도 환자 모집, 시험 의료기관 및 임상의 선정, 데이터 관리, 허가 신청 등 길고 복잡한 임상 과정을 진행할 기술·인력·자금·네트워크가 부족하다.

아무리 뛰어난 후보물질을 보유했더라도 전임상부터 3상까지 긴 임상 과정을 스스로 해내기에는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부담스럽기 때문에 임상에 특화된 전문성을 갖춘 CRO에 임상을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이 대규모 생산시설을 활용해 타 제약사들의 약을 위탁생산하는 바이오위탁생산(CMO) 사업을 하듯 임상을 대신하는 CRO 산업이 커지고 있다"며 "치료제 개발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특정 단계마다 전문성과 규모를 갖춘 기업들과 분업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CRO 업체들이 단순한 임상 대행은 물론 기술 수출이나 판매처 모색 등 개발 이후 과정에서까지 바이오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 성장세에 발맞춰 CRO 업체들이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서둘러 CRO를 신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업계 인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CMO 사업을 통해 국내외 제약사들의 제품을 생산해주며 연간 5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면서 "치료제 개발 앞 단계인 임상에서 CRO 역시 CMO를 능가하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CRO 산업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글로벌 CRO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0.8%에 불과하다. 국내 제약·바이오 전체 산업 규모가 글로벌 대비 1.4%인 것에 비해서도 낮다. 바이오 업계가 지난해 해외에서 실시한 임상시험은 100여 건으로 파악된다. 건당 비용이 1000만달러임을 감안하면 매년 1조원 넘게 해외로 임상비용이 유출되는 것이다.

국내 시장은 외국 CRO 업체들이 과점하고 있다. 2017년 국내 CRO 매출액 4300억원 가운데 외국과 토종 업체가 차지하는 규모는 각각 2373억원(55.2%), 1927억원(44.8%)이다. 2017년 국내 CRO 가운데 순수 국내 회사 45곳의 매출은 1927억원으로 외국계 회사 23곳이 올린 매출(2373억원)보다 적다. 특히 국내 회사 한 곳당 평균 연매출은 43억원에 불과하지만 외국계 회사는 이보다 2.4배나 많은 103억원에 달한다. 국내 회사로 규모가 가장 큰 CRO인 LSK글로벌파마서비스의 2017년 매출은 214억원이지만 외국계 선두인 퀸타일즈트랜스내셔널코리아(현 아이큐비아) 매출은 674억원으로 3배 이상 많다.

국내 CRO 업체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외국 CRO를 쓰는 건 나중에 해외 진출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며 "기술적으로 차이가 없지만 비싼 비용을 들여 외국 CRO를 쓰는 것은 실속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 외국 CRO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임상전문관리사(CRA)를 고용할 경우 임상이 없으면 인건비 부담만 커지기 때문에 CRO에 맡기는 비중이 90%에 달한다"며 "개량 신약이나 제네릭(복제약)은 국내 CRO에 맡기더라도 기술 수출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한 제품은 해외 CRO를 쓴다"고 밝혔다.

종근당도 "대부분 자체 임상을 하지만 해외 임상은 현지 규제기관과 소통되는 외국 CRO를 쓴다"며 "유럽 임상 중인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CKD-506', 미국 임상 중인 헌팅턴증후군 치료제 'CKD-504'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CRO 업체들은 정부가 자금을 집행하는 신약 개발 임상부터 CRO 대상을 토종 기업으로 한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토종 CRO 업체 관계자는 "적어도 정부 산하기관이 지원하는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임상을 하더라도 국내 토종 CRO들과 협업하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토종 CRO 역량이 강화돼야 국내 제약 산업 경쟁력이 올라가고 글로벌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종 CRO가 성장해야 바이오 산업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연구 데이터를 축적하고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일부 CRO 기업은 임상 전문성을 토대로 아예 신약 개발로 넘어오기도 한다. LSK글로벌파마서비스는 지난 2월 신약 개발 자회사 'LSK NRDO'를 설립했다. LSK NRDO는 성공 가능성이 큰 신약 후보물질을 외부에서 들여와 임상과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LSK NRDO는 동국대 산학협력단과 고형암 치료제 후보물질(DGG-200338) 특허기술을 양도받아 2021년까지 임상 1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영작 LSK NRDO 대표는 "임상 위주의 기존 활동 영역을 넘어 신약 개발 등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겠다"고 밝혔다.

■ 용어 설명

▷ 임상대행업체(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신약 개발 단계에서 제약사 의뢰를 받아 임상시험 진행 설계와 컨설팅, 모니터링, 데이터 관리 등 업무를 대행하는 기관으로 생동시험도 수행.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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