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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법정 가는 회계법인①] ‘억’소리 소송 폭탄으로 돌아오는 부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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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4’ 대형 회계법인 모두 분식회계 소송 당해 수십억 이상 물어줘

-대우조선 회계사기 사건에서는 법인과 회계사 형사처벌 첫 사례도 기록

헤럴드경제

[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회계법인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감사한 뒤 작성하는 보고서의 맨 뒷장 ‘클로징메모’는 수십억 짜리 소송에 걸릴 빌미가 되기도 한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민국에서 인정된 회계처리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표시하고 있다’며 ‘적정의견’을 써 준 대가로 수십, 수백억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20일 법원 전산망 검색결과에 따르면 ‘빅4’로 불리는 대형회계법인들은 모두 분식회계 기업을 부실감사한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치렀다.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은 민사 손해배상소송으로 41건의 재판을 받았다. 삼정회계법인은 2건, 안진회계법인 25건, 한영회계법인 6건으로 나타났다.

소송금액은 기본이 억 단위다. 삼일회계법인은 2008년부터 3년여 간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코스닥상장사 ‘포휴먼’의 외부감사인을 맡아 감사보고서에 ‘적정의견’을 써줬다. 포휴먼 측이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자 삼일 역시 소액주주 수백 명으로부터 각각 419억원대 소송을 당했다. 1심은 384억원을 인용했고, 그 중 140억원을 회계법인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2심에서 삼일의 배상 책임은 110억원으로 내려가 양측 모두 더 다투지 않기로 하고 확정됐다.

다만 법원은 회계법인 책임을 제한적인 범위에서 묻는 경향이 있다. 법원은 회계법인에 통상 20~30%가량의 책임만을 인정한다. 분식회계를 공모하거나 알면서 방조했다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원은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난 에스티엑스조선해양과 해당 외부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에 대해서도 책임의 크기를 나눴다. “(회계법인이)분식회계에 적극 가담했다거나 이를 알면서 묵인 또는 방치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직접 분식회계를 저지른 회사가 부담하는 책임과는 그 발생 근거 및 성질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안진회계법인도 사모투자전문회사로부터 268억원대 소송을 당했지만, 1심은 안진에 20억원을, 2심은 4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도 쌍방 상소해 대법원 계류 중이다. 법원은 “주식투자자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정보수집을 통해 대상 기업의 경영여건, 장래성을 고려해 투자한다. 전문가인 사모투자회사들이 전적으로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만 의존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적었다.

반면 분식회계에 공모한 사실이 확인되면 형사처벌을 받기도 한다.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안진회계법인은 분식회계에 공모하고 방조한 혐의가 인정돼 처음으로 소속회계사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법원은 “안진회계법인과 그 소속 회계사들은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과의 MOU 목표 달성을 위해 회계원칙에 반하는 회계처리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분식회계의 동기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고 봤다. 분식된 재무제표와 그를 이상이 없다고 공인해준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대우조선해양의 사기대출 및 사기적 부정거래 규모는 3조원대에 이르렀고, 대부분 국민이 납부한 세금에서 충당되는 공적자금 투입 규모가 무려 7조원대에 달했다.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은 각 1년에서 2년6월에 이르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법인은 7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회계법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된다면 실제로 돈을 받아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민사소송에서는 승소 여부와 상관없이 채무자의 재산을 찾아내 ‘집행’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어렵지만, 회계법인은 손해배상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기도 하고 손해배상 공동기금을 적립하기도 해서 돈을 가져올 출처가 뚜렷하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문제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으로 정하고 있다. 2014년 에이스저축은행 분식회계 부실감사를 이유로 안진회계법인에 걸린 손해배상소송은 3년이 경과해 ‘청구이유 없음’으로 기각됐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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