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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3세대 커피와 4차 산업혁명, 그리고 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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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송길영 Mind Miner


멋진 디자인과 천천히 드립으로 내리기로 유명한 커피전문점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1호점을 어느 동네에서 시작할 것인가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개업날 여는 시각보다 훨씬 앞서 줄을 선 인파에 유난이니 취향이니 저마다의 의견을 더합니다. 입점한 장소의 임대료가 얼마일지에 대한 추측부터 와이파이와 전원 콘센트도 없이 함께 온 사람과 커피에 집중하라는 운영 철학 역시 회자합니다.

성업 중인 동종 업계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기에 커피의 3세대가 도래했다는 글들이 미디어에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예전 이민 간 고모가 한국에 올 때마다 바리바리 싸 오던 인스턴트 커피를 1세대로, 지금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을 2세대로 정의하면 스페셜티 원두와 차별화된 경험으로 무장한 다음 세대의 커피가 다가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대’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합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 5G 기술이 기반이 된 5세대 이동통신처럼 분류의 기준으로 시작하는 숫자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큰 발전이 인류의 삶에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와 철기의 시대로 바뀌는 것처럼 역사적인 현장을 목도하는 시기에 내가 태어난 듯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위의 시대 변화는 몇만, 몇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빅데이터 5/20


증기기관의 발명에서 석유와 원자력, 태양열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근대의 과학적 진보는 겨우 200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10억에 그쳤던 세계의 인구는 7배가 넘게 늘었고 35세에 불과했던 유럽의 평균수명은 2배 이상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삶의 질을 높여주는 변화의 혜택은 개인의 쓸모와 반비례할 수도 있기에, 초음속을 돌파하는 전투기 안의 조종사처럼 현생 인류는 엄청난 변화의 가속도 속에서 적응의 현기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최빈국의 위치에서 3만 달러의 GDP를 이뤄낸 한국 사람들은 더욱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한국의 중년들에게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총력을 다하자는 구호는 어릴 적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끝까지 열심히 한 후에는 다시 4차 계획을 시작해야 했고요. 이러한 경험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은 더 큰 변화의 예견에 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다음 세대의 내가 저절로 늘어나는 나이처럼 아무런 노력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아날로그로 벌어지는 것이지 디지털로 구획되지 않습니다. 한 장씩 뜯어내던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고 삶의 다음 차원이 저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정리와 시작의 구분을 위해 편의상 만들어낸 시간과 날짜가 내 인생의 경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듯 삶이 연속적이어도 계속해 쌓아 나간다면 어느 순간 확실히 바뀌었음을 느낍니다. 하얀색 도화지를 흐린 연필로 칠해 나가며 조금씩 힘을 주면 어느새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매일 나에게 집중한 나는 다음 세대의 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갑니다. 선물처럼 주어진 진화하는 세상 속 나의 역할을 위해서, 혹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세상 속 나의 쓸모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나는 묵묵히 나를 업그레이드 해 나갑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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