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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그들이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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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수현씨(왼쪽)와 오성화씨는 두 달간 진행된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이 고통스러우면서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교육을 버텨낸 원동력 중 하나는 ‘연대’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인식 개선 연중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는 캠페인의 메인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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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영상제작자 박수현·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오성화씨…그들이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은 까닭은

베테랑 문화기획자와 청춘의 영화인은 어쩌다 대학로의 극장도, 홍대의 페스티벌 현장도 아닌 북한산 자락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 현장에서 만나게 됐을까. 우연이 만들어낸 인연의 낭만을 찾기엔 이들이 거친 고뇌의 역사가 너무 깊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오성화씨(46·휴직 중)와 전직 영상제작자 박수현씨(28)는 지난 4월26일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전문상담원 과정을 수료했다. 100시간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재비와 숙박·교육비를 포함, 35만원의 자비를 들여야 한다. 수료 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유망 자격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소정의 실전 과정을 마친 후 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상담 회원으로 자원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공지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선착순 50명의 정원은 순식간에 마감됐다.

지난 3일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오씨와 박씨를 만났다. 수료 일주일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졸업 후 수년 만에 만난 동창생처럼 반가워했지만,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예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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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여성수첩©일러스트레이터 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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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전문상담원 과정 수강하기까지

오성화 = 작년에 연극계 미투운동이 시작되고 이성을 잃은 시간을 보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다 내가 혼자 방방 뛰어다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본업은 쉬겠다’ 선언하고 여성기관에 입사지원신청서를 냈다. 여성가족부에서 미투 대응본부로 만든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특별신고센터였다. 입사 면접 당시 “여느 상담원들이 예술계 특유의 조직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시더라”는 점을 얘기하며 “차라리 문화예술 영역의 특수성을 잘 알고 있는 나를 훈련시켜 달라”고 했다. 피해자집중지원팀 소속으로 계약기간을 마친 뒤 미투 이후 여성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들에 대한 학습욕구가 커졌다. 구호로 많이 쓰는 말처럼 “한번 눈을 뜬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너무 자명했기 때문에 내 안의 여러 가지 고민들이 통합될 수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성화씨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과 함께 연극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에 대응해왔다. 미투 관련 연극인을 초청한 해외 행사의 주최 측에 항의서한을 보내 초청 취소를 이끌어낸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가해자가 형사 고소되었다는 것이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 미투 운동 당시 언급됐던 인사 대부분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박수현 = 나는 ‘나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학교 때부터 오래 고민하고 선택한 길이었는데, 호의와 존경을 기반으로 한 예술계 안에서의 성폭력을 경험하며 자기주체성을 잃는 경험을 했다. 지금껏 좋아하고 사랑했던 한 세계가 무너졌다. 많은 피해자들은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다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숙박 교육 당시에도 했던 얘기인데, 아직도 내 피해사실을 얘기하는 것이 괜찮다 싶으면서도 안 괜찮다. 아직도 그 일을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해서도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라 조심스럽다. 그러나 어쨌든 그 이후를 살아내려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세계와는 다른 신념이 필요했다. 상담원이 돼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오성화 = 나도 비슷하다. 성폭력전문상담원이 꼭 직업적 목표라기보다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뭐라도’에는 동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 같다.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눈빛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하던 언니들·선배들로부터 위로를 받고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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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스러우면서도 놀라웠던 경험

교육은 매주 목·금요일 종일, 간혹 수요시위 참가 등 수요일 일정도 있었다. 데이트폭력과 스토킹, 사이버 성폭력 등 각종 성폭력의 실태 및 수사 과정의 이해 및 민사소송 지원 과정에 대한 강의 외에도 성매매와 인권운동,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및 상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활동, 이주 여성의 성폭력 실태와 상담에 대한 교육 등이 이어졌다. 수업 자체의 강도도 셌지만,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일들이 많아”서 수업 중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귀가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되기 일쑤였다.

오성화 = 가장 의미 있는 발견은 성매매·성착취에 대한 개념을 잡은 것이다. 성매매는 가장 자신 없는 영역이었다. 성매매·성산업 구조에 대한 수업은 노동운동에서부터 시작해 30년간 활동한 활동가의 이야기, 그리고 당사자의 이야기로 이뤄졌다. 커리큘럼이 좋았다. 머리에 지도가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과거 성매매를 노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많았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당사자와 활동가로부터 “아무리 노동성을 강조하더라도 이것은 정당한 거래가 결코 될 수 없는 착취”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살면서 여러 순간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결국은 성차에 기반을 둔 차별을 받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자신 있게 매춘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건 다르겠지만, 군대 가기 전에 ‘그거’ 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중학생 버전, 고등학생 버전, 교사 버전, 아빠 버전 등으로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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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중에는 상담원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은 물론 실제 가정폭력으로 인한 고민을 가진 이도 있었고, 연구를 위해 찾은 학생도 있었다. 일부는 국비(고용노동부) 지원 혜택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번 교육차수에는 성폭력전문상담원 과정(50명)과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과정(50명)에 각각 1명씩 남성이 있었다. 교육생의 면면은 다양했다.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례회의에서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발언일 수도 있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거침없이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유일한 남성에게 건네는 “청일점이네”라는 말뿐만 아니라 “이 사례는 성폭력이라고 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시댁 식구들은 다 그렇지 뭐, 시누이가 괜히 그랬겠어”, “매일 남자같이 하고 다니더니, 여자처럼 입으니까 얼마나 예뻐”와 같이 여성을 향한 혐오성 발언이 날카롭게 귀에 꽂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논쟁을 벌이는 자리는 아니었다. 놀라운 건, 두 달의 교육으로 사람들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는 것이다.

박수현 = 토의 시간에 ‘빻은 소리’(차별적 언어)가 들리면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어떤 분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라고 되물어보셨다. 아, 저렇게 대처할 수 있구나! 그 과정을 통해 (발화자가) 살아온 맥락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렇게 ‘빻은’ 말들에 대처하는 여러 단계를 봤다. 우리 모두가 여러 단계의 여성주의 스펙트럼 안에 모여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여러 단계의 삶과 여러 단계의 이상한 소리들이 있었다. 그 안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빛나는 순간이 분명히 공존했기 때문에 이 과정을 끝까지 수료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오성화 =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박수현 = 많은 분들이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사람인 걸 몰랐다”고 표현하신다. 굉장히 사적인 얘기를 나누면서 감상을 주고받았다. 한창 현장에서 일할 때 태극기부대와 자주 마주치면서 편견을 쌓아왔는데, 어떤 교육을 받으면 사람은 변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 생겼다.

오성화 = 어떤 분이 수업 의도와 완전히 다른 발표를 하셔서 ‘마지막 수업인데 지금 저렇게 얘기하면 어떡하시지? 수업 진행하는 활동가가 당황스럽겠다’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활동가께서 전혀 당황하지 않고 3시간 수업을 진행하셨다. 이 순간이 ‘반짝’했다고 느낀 게,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각자 얘기를 하면서 상대가 소수가 되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것, 그 와중에 누군가 조정안을 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대화를 한다면 한국 사회가 정말 평화로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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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 관계를 위한 가장 상식적인 철학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 전국 25개소의 총 상담건수는 3만5635건에 달했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국 성폭력상담소의 상담건수는 약 25% 증가했으나 상담 인력이나 상담소는 거의 늘지 않았다. 과중한 업무는 물론 정신적인 고충도 상담사의 ‘장기근속’을 어렵게 한다.

직업 분류표로 보면 꽤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과연 성폭력전문상담원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았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활동하겠다”고 답했다. 내실 있는 커리큘럼을 통해 성폭력상담원이 ‘전문직’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 것이 이번 만남의 첫 수확이라면, 두 번째 수확은 상담이라는 행위 본연에 대한 두 사람의 성찰을 엿본 것이다.

박수현 = 트라우마 강의를 듣고 나서 관련 책을 읽었는데,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3단계가 나오더라. 첫 번째는 나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 두 번째는 나 자신의 피해를 정확하게 내 언어로 바꾼 후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세 번째는 새로운 철학을 찾는 것이었다. 교육 초기에 수많은 빻은 말들과 대혼란 속에서 심란해지며 ‘나도 못 추스르면서 이 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느 지점이 지나자 3단계가 순차적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는 걸 실감했다. 무너진 나 자신을 새로 쌓을 수는 없어도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상담이라는 것이 작으면 작고, 크다면 큰일인데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 사람의 목소리로 작업을 해왔던 터라 나도 듣는 건 익숙하다.

오성화 = 멋진 말이다. 나도 완전히 공감한다. 일반 사회의 직업군 분류로 따진다면 우리 둘 다 예술가이니 성폭력가정폭력 전화상담원이 된다는 게 아주 다른 듯 보이지만, 나는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느낀다. 그동안 동료들 혹은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며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풀어가는 방식으로 일해 왔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수평적 관계였다. 만약 내가 뭔가 더 많이 아는 위치에 있게 되면 자꾸 답을 주고 싶은 욕구가 솟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러오는 오류도 경험해봤다. 성폭력 상담 과정에서는 특히나 (내담자를) 타자화시키는 위험성이 있다는 걸 배우면서 더 긴장감을 익혔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어려움을 느끼긴 하지만, 결국 내가 경험한 100시간의 수업은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을 때 어떻게 타인을 침해하지 않고 같이 공동의 합의과정을 끌어내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회로 가는 가장 상식적인 철학, 가장 기본의 수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박수현 = 나는 성폭력·가정폭력상담원 두 과정을 들었다. 그중 한 남자 수강생께서 수업 중 발언을 꽤 많이 하신 편인데도 말을 적게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그때 다른 수강생이 “어디 가서 발언할 기회가 많으실 테니까 아쉬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얘기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다. 다른 남성들도 그런 경험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발언권이 줄어드는 경험을! 수많은 여성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래서 이 수업을 청소년에게도 권하고 싶다.

오성화 = 어떤 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 수업을 필수로 들었으면 한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젠더, 섹슈얼리티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불평등한 관계를 갖고 있고 또 얼마나 잘못 표현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이미 너무나 장악된 문화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내 발언이 힘을 갖는 위치에 가는 순간은 (젠더 감각을) 훨씬 더 긴장감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의미로 성폭력예방교육 같은 법정의무교육이 아니라, 이런 수업을 많이 들어야 한국사회가 나아질 거라고 확신한다.

박수현 =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얘기하는 게 어려서부터 내 강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내 안의 분노로 인해 자꾸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에도 다시 말할 수 있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이 수업이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됐다. 이때까지 나는 내 얘기가 되게 후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진 건 내가 아니라 가해자, 가해자가 했던 말과 행동이었다. 교육 과정에서 이 얘기를 했는데, 다른 수강생이 “인상 깊었다”는 소감을 들려줬다. 그 말을 통해 오랜만에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교육 내내 서로에게 힘을 얻어가는 말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더 좋은 방향으로 서로 변해가고 있는 그 과정 안에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나를 긍정하는 시간이었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언어들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성폭력 가해를 규탄하는 집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구호를 박수현씨는 이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피해생존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으며 박씨는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운을 얻었다.

오성화씨는 지난해 공공기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지금 예술가들은 너덜너덜하다”고 호소했다. 세월호, 문화계 블랙리스트, 미투 정국을 거치며 직업 특수성상 큰 타격을 받은 예술가들을 위해 예술가 심리상담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공연계 미투는 결국 조직문화가 달라져야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예술계에 특화되어 있는 상담시스템과 더불어 조직문화의 변화까지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형사법으로 처벌되는 가해자 징계 외 공동체와 예술행정 안에서 추진할 수 있는 가해자 징계의 틀거리와 사회적 합의를 고민하고 있는 탓에 본업 복귀 시기는 또 미뤄졌다. 조급함을 버린 오씨는 “지금은 내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당장 6월부터는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과정을 들을 참이다.

글 장회정·사진 강윤중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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