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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허연의 책과 지성] 플라톤 (BC 427~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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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이미 간파한 대로 인간은 대단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냥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욕망덩어리인 한 존재로 말이다.

이 던져진 욕망덩어리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야 했으니 '약속'이라는 게 필요했다. 그 약속이 '국가'다. 필자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이렇게 이해한다. 플라톤은 대화편 중 하나인 '국가'에서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꺼낸다.

평범한 목동이었던 기게스는 지진으로 갈라진 땅에서 동굴을 발견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기게스는 죽어 있는 거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마법의 반지를 빼 가지고 나온다. 한쪽 방향으로 돌리면 낀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는 마법의 반지였다. 놀라운 힘을 가지게 된 목동은 이 마법을 어디에 썼을까.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썼을까. 아니다. 목동은 왕비와 간통하고, 칸다울레스왕을 암살한 뒤 스스로 리디아의 왕위에 오른다.

이 대목에서 존 로널드 톨킨의 베스트셀러 소설 '반지의 제왕'이 떠오른다. 절대반지를 없애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프로도는 모르도르 화산 앞에서 어떻게 했는가. 끓어오르는 용암에 반지를 던졌는가? 아니다. 프로도는 반지를 던지기는커녕 자기 손에 그 절대반지를 꼈다.

플라톤은 이같은 인간의 태생적 욕망을 제어해야 이상적 국가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는 엘리트로 훈련된 철인이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엘리트(수호자)에게 강력한 정신력을 요구했다.

"나라의 수호자들은 일반 시민들과 달리 금은(金銀)을 다루거나 만지지 말아야 하며…금은을 몸에 걸쳐서도 안 되며 금은으로 만든 술잔으로 술을 마셔서도 안 된다…이들이 땅과 집과 돈을 소유하게 되면 이들은 수호자가 되지 못하고…적대적인 주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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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제3권에 나오는 말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우악스러운 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문장을 오늘의 현실에 적용해 보자. 권력을 가진 자들이 금은을 소유하는 걸 허락했더니 어떻게 됐는가. 금은을 가진 그들이 국가의 수호자가 됐나? 아닌 것 같다.

금은을 가진 위정자들은 결국 국가의 '적대적 주인'이 됐을 뿐이다.

플라톤이 살아 있었다면 공정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돈 추문'의 주인공이 되는 요즘 권력을 보며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하다.

플라톤은 왜 인간을 욕망의 화신으로 전제하고 극단적 주장을 폈을까.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자.

당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한다. 패배의 대가로 아테네에서는 친스파르타 세력에 의한 참주정이 시작된다. 참주들은 아테네 시민을 억압하는 독재정치를 자행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다시 민주정이 힘을 얻었지만 민주정 역시 포퓰리즘 때문에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 무렵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며 대놓고 민주정 권력자들을 비판했다. 광기로 가득 찬 아테네가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두고 봤을 리가 없다. 결국 그에게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애매한 죄목을 씌워 독배를 마시게 한다. 상실감에 사로잡힌 아테네인들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28세 플라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를 접는다. 그는 말한다. "참된 철학을 하기까지 인류는 고민에서 풀려날 수 없다."

플라톤의 고뇌는 여전히 유효하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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