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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크리틱] 덕후가 많아지는 이유 /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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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주위 사람들과 영화 <어벤저스: 엔드 게임>을 소재로 이야기할 일이 많았다. 젊은층이 섞인 그룹이라면 어디에도 어벤저스의 ‘마니아’나 ‘덕후’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그들의 ‘덕질’은 작품을 보러 가거나 관련된 상품을 소소하게 사모으는 정도인 경우도 많다. 개봉 7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생각하면 둘 중 하나다.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는 정도로는 ‘덕후’라 부를 수 없거나, 한국에 어벤저스 덕후가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파생한 말이다. 어떤 것에 아주 깊이 빠진 사람을 뜻한다. 대상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애정이 조금 지나쳐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거나 사회생활에 다소의 지장이 있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도 내포한다. 그래서 협의로 쓰일 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분야인 만화, 애니메이션과 아이돌이 중심에 놓인다. 영화에 깊이 빠진 사람은 ‘씨네필’ ‘영화광’ 같은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덕후를 자처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대상이 되는 분야도 많아지는 듯하다.

어휘의 의미 변천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영화배우나 작품, 때론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들은 ‘덕질’, 즉 덕후의 행동양식을 보이기도 한다. 대상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열정적으로 찾아가고, 응원의 메시지를 적은 핸드 슬로건을 들어 보이고, 고사양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일러스트나 소설 등의 2차 창작을 하기도 한다. 에스엔에스(SNS)의 계정을 그 대상과 관계된 이름으로 바꾸거나, 대상의 이름으로 사회적 기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분위기에 발맞춰 언론사 에스엔에스도 덕후들의 신조어를 빠르게 흡수하려 애쓴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티브이의 예능이나 드라마가 덕후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엿보인다. 아이처럼 만화나 아이돌에 언제까지고 빠져 있는 철부지이며, 그래서 나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식이다. 티브이엔(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그나마 이제 성인의 즐길거리가 된 이 문화를 다룬다. 주인공 성덕미는 직장생활을 유능하게 하면서 뒤에서 아이돌 덕질을 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멀쩡한 사회인의 얼굴과 덕후의 그것은 반전 요소로 제시된다. 작품의 핵심 플롯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두가지 삶이 빚어내는 긴장 위에 펼쳐진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을 한켠에 놓고, 그 대조항으로서 덕질과 유치함을 동일시한다.

똑같이 ‘덕후’란 표현을 쓰더라도 대상에 깊이 빠진 사람일수록 자조를 싣는 듯하다. 애초에 멸칭으로 시작된 말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덕후’에서 더 나아가, 미쳐 있다는 뜻의 비속어에서 비롯된 ‘처돌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대상에 대한 애정 때문에 심하게는 정상적인 사회인이 못 될 정도라는 의미다. 어차피 ‘노답’인 삶이니 포기하고 즐기자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덕후가 된다.

누군가 덕후를 자칭할 때 그의 ‘덕후 진정성’을 따질 필요는 별로 없다. 덕후가 많아졌든, 덕후를 자칭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든 배경에는 비슷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삶에서 희망이나 보람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덕후가 된다. 또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취미에도 ‘덕후’라는 이름표를 꺼내든다. 또 누군가는 비생산적인 취미를 즐기는 자신에 대해 그 정도의 핑계는 필요하기 때문에 역시 같은 길에 들어선다. 주위에 덕후가 많아지는 것 같다면 현실적인 이유든 심리적인 이유든 여가를 즐길 수 없는 삶의 방증일지도 모른다. 덕후 현상을 그저 즐겁고 재밌는 것으로 가볍게만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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