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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주52시간` 버스파업 예상됐는데…정부도 지자체도 손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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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버스대란 위기 ◆

매일경제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의 9개 지역 노조 200여 개 사업장에서 파업 찬반투표가 열린 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공영차고지에 운행을 멈춘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날 노조는 15일 1만8000대가량의 버스 운행을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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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버스 노조가 '국민의 발'을 볼모로 삼았다. 9일 전국 버스 노조는 15일 총파업을 결의하고 전국에서 1만8000대가량의 버스를 세우겠다고 경고했다.

버스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7월부터 시행 예정인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춰 기사 충원에 나서야 할 버스업계 주머니는 텅텅 비어 있는데도, 노조가 무리해 근로시간 단축 이전 임금을 보전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총파업 결의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쟁의조정 신청→파업 찬반투표→찬성 가결→조정→극적 타결'로 이어지는 '벼랑 끝 전술'을 펴기 위한 수순이라는 평가다.

지난달 29일 지역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한 서울, 대구, 인천 등 전국 12개 지역 노조 중 9일 현재 9개 지역 노조(인천, 대전, 경남 창원 제외)가 사실상 파업을 의결해 버스회사, 지방자치단체 등과 노동쟁의조정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버스 사업장은 공익 사업장으로 분류돼 10일로 정해진 일반 사업장보다 조정 기일이 5일이나 더 길다. 쟁의조정 신청일을 기준으로 보름 동안 조정 협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버스 노조는 파업권 행사가 가능한 15일 0시 이전까지 최대한 사측을 압박하며 밀어붙일 수 있다.

노조는 10일 전국 대표자 회의를 열어 파업 전까지 남은 5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버스 노조 관계자는 "전국 대표자들이 하나로 뭉쳐 교섭 상황 등을 공유할 예정"이라며 "교섭이 잘됐을 경우와 안 됐을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공동 대응 일정도 논의한다"고 말했다. 15일 전 이뤄질 조정회의가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전국 버스 노조는 과거에도 사측과 대결 구도를 만들어 가는 전술을 펴 왔다.

2015년 6월 25일 새벽 3시 50분,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시급 3.7% 인상안에 합의했다. 당시에도 첫차 운행 시간인 오전 4시를 10분 남기고 합의해 '극적 타결'이 이뤄졌다. 사용자 측인 서울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은 시급 7.29%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에 맞서 동결을 주장하다 결국 버스 파업 10분을 남기고 시급 3.7% 인상에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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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서울시 버스 노사 합의는 더 극적이다. 노조가 예고한 파업 시한을 40분가량 넘긴 2012년 5월 18일 오전 4시 40분 전격 타결이 이뤄졌다. 당시 서울 버스 노조와 서울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은 16일 오후부터 17일 새벽까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장시간 임금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17일 오후 3시 서울역에서 출정식을 개최하며 사측을 최대한 압박해 온 노조는 파업 예고 시간까지 넘긴 끝에 기본급 4.5% 인상에 무사고 수당 4만원 지급을 이끌어냈다. 이번 총파업 경고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출발점 성격이 짙다.

수도권 버스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파업 결의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단축될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 보전 문제가 핵심이어서 엄포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버스 운송 수입으로 임금을 줘야 하는 버스업체 입장에서 노조와 타협할 수준을 넘어선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지자체로 모든 권한이 넘어가 지자체를 설득하는 것 외엔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궁극적 해결책은 지자체에서 버스 요금을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며 "지자체 실무진에서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지만 일부 단체장들의 정치적 고려 때문에 버스요금 인상이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도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직접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찾아가 설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가 서울시와 환승 할인으로 묶여 있는데 경기도만 요금을 올리면 그 부담을 모두 떠안게 된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국토부는 경기도를 계속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도 버스 규모가 가장 크고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계속 협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도 "속단하기 어렵지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스요금과 노선 조정 권한 등 근로 조건을 포함한 노선 버스의 노조 협상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지자체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인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결국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폐해다. 타협이나 노동력 충원 등을 통해 파업 문제를 해결해도 '땜빵 처리'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홍구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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