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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미륵사지 석탑 마지막 돌 올릴 때 가슴이 찡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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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 보수 참여 김현용 연구사 "이젠 아빠 노릇 하고 싶어"

연합뉴스

미륵사지 석탑 앞에 선 김현용 연구사
(익산=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가 30일 미륵사지 석탑 준공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익산=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김현용(43)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인생 절반가량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꼬박 함께했다.

그런 석탑이 보수·정비 공사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됐음을 알리는 준공식을 고하는 30일, 점심을 먹은 뒤 식당에 홀로 남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아예 펑펑 운 직원도 있습니다."

준공식을 마치고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김 연구사는 미륵사지 석탑과의 인연이 2000년에 시작됐다고 말했다.

익산에 있는 원광대 건축학과 95학번인 그는 4학년 때 한국건축사 강의를 들으면서 문화재에 관심을 두게 됐고, 아르바이트생으로 미륵사지에서 처음 일했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가 시작된 2001년 건축조사보조원이 된 그는 연구원을 거쳐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로 임용되면서 미륵사지 석탑 보수 현장 책임자라는 중책을 맡았다.

석탑 부재를 하나하나 해체할 때도, 탑에 사리를 봉안한 주인공이 백제 왕후이자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기록이 있는 사리봉영기가 발견됐을 때도, 1천627개에 이르는 석재를 쌓아 올릴 때도 미륵사지 작업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김 연구사는 2009년 사리장엄구가 나왔을 당시를 회고하면서 "유물을 본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유물 전문가가 아니라 겁도 났는데, 모든 공정을 멈춰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2017년 석탑 6층 마지막 돌을 올릴 때는 "가슴이 찡했다"며 "작업은 끝났지만,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우려한 점은 석탑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가설 덧집 철거였다. 2018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이어진 철거 작업 동안 행여나 석탑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내야 했다.

김 연구사는 인터뷰 도중 유독 팀을 강조했다. 언제 보람을 느꼈는지 말해 달라는 질문에도 "함께 고생한 팀원들이 즐겁다고 할 때 뿌듯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일한 사람들 덕분에 보수공사가 무사히 끝난 것 같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20년 만에 모습 드러낸 미륵사지 서쪽 석탑
(익산=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사지 터에서 30일 열린 서쪽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에서 시민들이 20년간 보수복원 공사를 끝내고 공개된 서쪽 석탑을 관람하고 있다. 2019.4.30 jjaeck9@yna.co.kr



그는 2007년 검찰이 횡령 혐의가 있다며 미륵사지 사업단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로 인해 팀원들이 고통스러워했고, 몇몇 직원은 사표를 쓰기도 했다.

시련은 지난 3월 감사원이 미륵사지 석탑이 일관성 없이 복원됐다고 발표하면서 또다시 찾아왔다. 그는 "감사원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이라면서도 "문화재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소요 기간은 본래 5∼10년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20년이 걸렸다. 전문가들이 서두르지 말자고 조언했고, 연구에 바탕을 둔 건축문화재 보수는 사실상 처음이어서 차근차근 진행했다.

김 연구사는 "1990년대에 복원한 미륵사지 동탑과 이번에 정비를 마친 서탑은 모습이 크게 다르지만 공존한다"며 "문화재 수리 방향성이 약 30년 사이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년간 미륵사지 석탑 보수에 매달린 그는 연말까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미륵사지 복원과 정비 관련 연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일부러 미륵사지 석탑에 관심이 없는 척 했어요. 그래도 준공식 때 보니까 우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열세 살, 열한 살 두 딸을 위해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잘하고 싶습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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