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신율의 정치 읽기] ‘왕따의 슬픔’과 장외투쟁…黃대표의 100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사진 오른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4월 24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지난 100일 동안 황 대표의 공과 과는 무엇이었는가 다양한 분석 기사가 쏟아졌다. 당대표로서 100일의 흔적은 앞으로 황 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물론, 대권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황 대표의 100일 행적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를 처음 시작하신 분이 그렇게 입문해가지고 막판에 무엇으로 끝내려고 하는 것입니까?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라는 핀잔에 가까운 비난을 했음에도, ‘정치 신인’ 황교안의 100일 행보가 낙제점은 아닌 것 같다.

황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온갖 의혹 제기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관료 출신 정치 신인이 과연 그런 험로를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과거 고건 전 국무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순수 관료 출신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온갖 비난과 가짜뉴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지금까지만 보면 황 대표는 나름 잘 견디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잘 견디게 된 데에는 당(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황 대표와는 달리 당의 전폭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위치였다. 반면 황 대표는 당대표기 때문에 황 대표에 대한 도전은 곧 당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당이 전면에 나섰다. 바로 이런 점이 과거 관료 출신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황 대표가 잘 버틸 수 있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황 대표의 첫 번째 정치적 시험대는 4·3 재보선이었다. 4·3 재보선 결과를 보면 한국당 입장에서 최소한 본전은 건졌다. 사실 선전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황 대표가 첫 번째 ‘공식 시험’을 잘 치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자유한국당이 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하나는 재보선치고 경이적인 투표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권자의 ‘분노투표’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둘째, 투표의 본래적 의미를 생각할 때 유권자에게 한국당이 과연 ‘최선의 대안’으로 비쳤는가다.

두 번째부터 생각해보자. 보통 투표 행위를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리 정확한 생각이 아니다. 일반적인 유권자는 원하는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싫어하는 사람을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현상’인 정치인 팬클럽에 가입한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투표하겠지만, 일반적인 유권자는 그렇지 않다. 일반 유권자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라기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투표한다. 당연히 최선이 아닌 차악이나 차선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투표 행위의 일반론적 입장에서 보면 이번 재보선에서 자유한국당 선전은 한국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최악을 피하려는 유권자 심리 덕분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높은 투표율이 보여주는 분노투표의 가능성은, 앞에 언급한 일반론적 투표 행위의 동인에 대한 설득력을 더욱 높여준다. 즉, 현 정권의 경제적 실정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최악을 피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추측이 사실이라면 황 대표의 노력 덕분에 한국당 후보들이 선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재보선 결과를 황 대표 100일 동안의 성과로 꼽기는 어렵다.

하지만 황 대표는 지난 100일 동안 나름의 능력도 보여줬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한국당 장외집회는 야당으로서의 나름의 역할과 야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측면이 있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당 장외투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1야당이 국회에서 투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장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이 또한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당이 왜 장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가다. 중요한 이유는 청와대에 의해 발생한 ‘정치의 실종’이다.

이번 정권 들어 야당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역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야당들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자주 한다는 사실은 정치가 실종됐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당들은 국회 안에서 치고받는 한이 있더라도, 청와대 앞에 가서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나와보지도 않는 시위를 하며 스타일 구기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가 왜 실종됐을까? 과거에는 국민이 여당 대변인은 잘 기억해도 청와대 대변인은 누군지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 정권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을 여당 대변인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한다. 이는 중요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여당을 제치고 전면에 나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청와대가 여당을 제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정치는 실종된다. 또 청와대가 여당을 제치고 전면에 나선다는 사실은, 국회라는 정치의 장은 쪼그라들고 대신 청와대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식의 ‘직접 민주주의’가 주된 통치방식으로 등장함을 의미한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 우리나라 인구가 너무나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정치만 실종되고 되는 일은 없는 상태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정치의 장(場)이 작아지면 여당만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야당 역시 설 땅이 없어진다. 여야 모두 반길 리 없다. 하지만 여당은 지금처럼 대통령 지지율에 자신들 지지율이 연동되는 상황에서는 이런 현상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야당은 다르다. 야당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정치적 죽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거리에 나가서라도 자신들 주장을 떠드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 한국당 장외투쟁에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 이렇게 해야만 야당으로서의 역할과 존재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초년생 황 대표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나름 정치 감각이 있음을 보여준다. 장외투쟁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야당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고, 그 선택의 불가피성을 황 대표가 잘 알고 있기에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나름 민심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최소한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어젠다 세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계속되는 당내 망언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를 보면 중도층을 과연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황 대표 정치적 감각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지금 황 대표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졌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이 이른바 패스트트랙에 합의하면서 불거진 ‘한국당 왕따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 여론이 한국당 입장을 이해하고 동의할 것인가다.

일단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보면, 지금 합의한 정당조차 이 문제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것이 국민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현재 합의한 내용을 보면 지역구가 상당수 줄어들어야 한다. 국회 본회의에 사안이 넘어갔을 때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질 것인가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공수처 문제를 봐도 그렇다. 지금 합의한 공수처 안을 보면, 장차관과 국회의원은 빠지고 판검사와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이 공수처 기소 대상으로 돼 있다. 이런 미완의 합의안에 국민이 동의할 것인가 미지수다.

황 대표가 정치적 감각을 갖고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핸들링하느냐에 따라 한국당이 겪는 ‘왕따의 슬픔’을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황 대표 앞에는 또 한 번의 시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정치는 특정 사안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 이길 수 없는 위치에 빠진다. 주장을 단순화시켜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정치적 능력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6호 (2019.05.01~2019.05.0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