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현진의 순간속으로]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만든 영화 ‘생일’의 한 장면이다. 왼쪽은 영화 속 배우 설경구, 오른쪽은 전도연. ‘유민 아빠’로 알려진 김영오씨는 앞에서 하염없이 울던 나에게 “이제 그만 울어요”라며 비타500을 쥐여줬다. 그 비타500은 여전히 내 냉장고에 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 N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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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4월은 잊을 수 없이 쓰라린 날이 되고 말았다. 꽃이 피고 바람 따라 꽃잎이 날리는 아름다운 계절. 왜 이때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야만 할까. 그토록 많은 아이가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 후 5년간, 봄이 올 때 꽃은 피어나지만 그 아름다움만큼 진한 슬픔이 느껴지곤 했다.
창작과비평에서 출간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말 그대로 수학여행이 끝나는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돌아오라고 외는 진혼곡이다. 이 진혼곡은 떠나간 넋을 위로하면서 떠나간 사람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녀를 잃어 무너져 내린 가슴에 어떤 위로의 말을 들려준다 한들 그것이 어찌 찢긴 가슴에 스며들겠는가.
일반인 희생자도 많지만 단원고는 한 학년이 깡그리 없어지다시피 한 아픔을 겪었다. 학생 부모들의 심장은 아직도 갈기갈기 찢긴 채일 것이다. 멀쩡하게 잘 키운 아들을 사고로 하루아침에 잃은 고 박완서 작가도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참척'에 대하여 그토록 오랫동안 절절히 쓰지 않았던가. 김애란, 김행숙, 박민규 등이 다수 참여한 문학동네의 책 '눈먼 자들의 국가' 역시 너무나도 안타깝게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린 영혼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노란 리본을 소지품에 달고 다닌다. 우리 모두가 4월 16일 배가 가라앉던 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유족들이 모인 광화문에는 대구지하철 사고 유가족들과 민주화 운동으로 아들, 딸을 잃은 부모님들이 '울지 마라, 우리가 그 마음 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나에게 세월호는 '비타500'이다. 웬 뜬금없는 비타민 음료 이야기냐 하면, 2016년 세월호가 침몰 2주년을 맞았을 당시 우리에게 '유민 아빠'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김영오씨를 인터뷰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는 '너희는 즐거운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울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구절을 매우 좋아하지만, 이렇게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자 대책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자식 잃은 슬픔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당시 진행하던 팟캐스트를 위해 김영오씨와 인터뷰를 녹음하면서, 나는 광화문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슬픔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랐다. 결국 질문지에 나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영오씨는 "유민이가 꿈에라도 한번 나와 주면 좋겠는데, 꿈에도 나와 주지 않는다"며 탄식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새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면서 그는 결국 눈시울이 벌게졌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면서도 결국 인터뷰를 마쳤다. 김영오씨도 한참이나 눈물을 찍어냈다. 야속하게도 꿈에 한번 찾아와주지도 않는다는 유민이에 대한 그리움. 광장은 김영오씨의 그리움뿐 아니라 저마다 가슴에 묻고 만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꽉 찼다. 그 속에서 나는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한참을 얼굴을 찡그리고 못나게 훌쩍였다. 광장을 꽉 채운 슬픔이 너무나 절절해서, 이 슬픔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 논리로 재단하는 목소리들이 아파서, 그렇게 울고 있는데 김영오씨가 나에게 화장지를 건네며 나를 달랬다. 그러고는 울어서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울어요. 울지 말아요."
그간 부족한 글을 너그럽게 봐 주신 독자 여러분께 이번을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다들 부디 강녕하시기를 빈다.
연재를 마칩니다
'김현진의 순간속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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