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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힘든 일에 먼저 팔 걷는… 그녀의 쉼표 없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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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옥분 지음/선우미디어/1만3000원


날개를 꿈꾸는 굼벵이/김옥분 지음/선우미디어/1만3000원

“‘왜 운전대를 잡아. 남편은 뭐 하는 거야?’ 묻지 마시라. 보나 마나 스스로 당연한 듯 운전석에 먼저 올랐을 것이니까. 인생의 첫째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힘든 일은 내가 먼저’이다. 언젠가 그녀와 바다 청소를 하러 서해 외딴섬엘 간 적이 있다. 이 봉사활동에는 여러 단체가 연합되어 있었는데 우리 쪽 30여명의 실질적 책임자는 나였다. 그런데 나는 봉사라는 걸 조직적으로 해본 적 없는 위인이다. 뱃멀미까지 하며 그 먼 섬에 도착하자 해는 이미 기우는 중이었다. 본부에선 팀마다 쌀과 김치와 돼지고기와 푸성귀를 나눠주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취사도구라곤 마당에 걸어놓은 화덕과 거대한 양은솥 두어 개, 플라스틱 바구니뿐이었다. 30명은커녕 10명도 밥을 직접 해 먹여본 적 없는 나로선 최대의 위기였다. 그때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나섰다. ‘걱정 마세요. 우리한테 찌개 얻어먹으려고 우르르 몰려들지나 마세요.’

작가 김옥분이 등단한 지 20여년 만에 수필집을 냈다. 뭐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그녀를 옭아맨 두 번째 이데올로기다. 일찍이 교단에 섰다가 결혼 후 그만둔 김 작가는 느닷없이 무슨 시험공부를 하더니, 50이 넘은 나이에 상담직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 남편의 반대가 있었고 아이들도 별로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 맞벌이에 나설 만큼 생활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전에는 모 문학회 회장을 맡아 10여년 혼신을 다했다.

성당의 봉사활동도 쉬지 않고 해왔다. 왜 공무원 시험을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추하건대 ‘놀면 뭐해?’가 첫째일 것이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매혹도 뿌리치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봉사활동처럼 생각하는 김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 그럼처럼 펼쳐진 수필집이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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