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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급 와인이 더 끌리는 나, 취향이 문제인가? 등급이 문제인가?[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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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인의 경제학 프랑스 와인등급
160년째 똑같은 프랑스 와인등급 체계 논란
실제 거래되는 가격..매겨진 등급과 불일치
와이너리 주인·재배 면적..품종·제조법 등 다 바껴
예전과 같은건 간판 뿐 품질 반영하기엔 한계..등급만 맹신하면 '와알못'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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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그랑크뤼 클라세 3등급을 받은 프랑스 보르도의 유명 와이너리가 1938년 포도 밭을 모두 팔았습니다. 이후 1981년 이 와이너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이 그랑크뤼 클라세 3등급 와인 브랜드를 사들이더니 다른 곳에 포도밭을 조성해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이 와인은 그랑크뤼 클라세 3등급 와인일까요. 아니면 그냥 등급 외 와인일까요.

샤또 데미라이(Chateau Desmirail) 얘기입니다. 현재 이 와인은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3등급 와인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물론 품질은 그 수준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있지만 엄연한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입니다. 등급 제정 당시와 전혀 다른 와이너리가 전혀 다른 포도밭에서 다른 와인을 생산하지만 당시 등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죠. 1855년 그랑크뤼 클라세와 지금의 그랑크뤼 클라세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단적으로 지적하는 좋은 예입니다.

포도나무도, 품종도 모두 바뀌었는데….

보르도 와인의 특징은 영롱한 루비빛에 복합적인 아로마와 부케가 잘 어우러진 균형미가 특징이지만 1855년 당시 보르도 와인은 지금과 크게 달랐습니다. 현재의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합니다.

우선, 당시 포도나무와 지금 포도나무가 전혀 다릅니다. 그랑크뤼 클라세가 제정된 이후 1870년대 필록세라(Phylloxera) 병이 창궐하면서 당시 유럽종 포도나무와 전혀 다른 새로운 포도나무가 심어졌습니다. 필록세라는 미국종 포도에 자생하는 진딧물의 일종으로 유럽으로 유입되자마자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유럽의 와이너리들은 미국 종 포도나무가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시 유럽종 포도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미국 종을 심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나무에 유럽 종 포도나무 가지를 접붙이면서 유럽 와인의 역사가 가까스로 다시 이어졌습니다.

포도 품종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보르도 하면 메독의 경우 까베르네 쇼비뇽을 기반으로 여러가지 품종을 블랜딩하고, 생떼밀리옹이나 포므롤의 경우 메를로를 기반으로 다른 품종을 섞지만 당시에는 보르도 지역 거의 모두가 말벡 품종을 심었습니다. 말벡은 햇살이 좋아야만 좋은 품질을 내는 포도 품종이어서 이후 보르도에서는 아무 곳에서도 잘 자라고 맛도 좋은 까베르네 쇼비뇽으로 모두 바꿨습니다. 포도 품종이 바뀌면 포도 재배기술도 다르고 이로인한 와인의 맛도 크게 달라집니다. 즉, 당시의 포도나무와 포도 품종이 지금과 완전히 다르니 같은 와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당시 와인은 알코올도수 10% 정도로 낮고 타닌도 적어

그리고 와인의 품질도 지금과는 천지차이였습니다. 1855년 등급 제정 당시 그랑크뤼 클라세를 포함한 일반적인 와인의 알코올 농도는 10% 안팎으로 아주 낮았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13~14%에 달하는 요즘 와인과는 달리 맛이 밍밍하고 타닌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기후도 더 서늘한데다 포도재배 기술도 떨어졌기 때문이죠. 와인의 색깔도 거의 로제와인에 가까운 아주 연한 빚깔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와인은 그 해에 담가 바로 마시는 술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강한 타닌과 산도를 가진 와인도 아니었고 이를 장기간 보관하면서 숙성시키는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개상들은 와이너리가 빚은 햇 와인을 사들여 자신들의 와인저장고에서 일정기간 숙성 또는 보관을 하면서 수출을 하거나 국내에 팔때는 여러 와인들을 혼합했습니다. 도수가 약한 와인은 다른 지역 와인과 섞기도 하고, 맛이 다른 와인으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품질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중개상들은 각 샤또들의 와인 품질을 가장 잘아는 사람이며 와인 블랜딩 기술자였습니다. 1855년 중개상들에게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리스트 작업을 맡긴 이유였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와이너리는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담가 넘기는 가장 기초적인 생산자였다는 것이죠.

전혀 다른 밭인데도 등급와인 인정받아

1855년 당시의 포도밭과 와이너리, 와인제조자가 지금과 동일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유명 와인평론가인 장홍씨는 그의 저서 '와인, 문화를 만나다'에서 이같은 점을 지적합니다. 포도밭만 보더라도 1855년 당시 보르도의 포도밭은 2650ha였지만 지금은 3450ha로 약 30% 이상 늘어났습니다. 이 800ha에 달하는 포도밭은 등급과 무관하게 존재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1등급 와인인 샤또 라피트 로췰드(Chateau Lafite Rothschild)의 경우 1826년 토지대장에는 74ha였지만 현재는 103ha로 39.1%(29ha)가 증가했습니다. 또 샤또 라뚜르(Chateau Latour)는 당시 55ha에서 현재 78ha로 41.8%(23ha)가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증가폭이 적은 편에 속합니다. 샤또 라스콤브(Chateau Lascombes)는 1826년 7.2ha에서 현재 82ha로 12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또 샤또 프리에르 리싱(Chateau Prieure Lichine)도 당시 10ha에서 현재는 69ha로 7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늘어난 포도밭들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모두 같은 등급으로 출시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금 시장에서 통용되는 와인 가격을 중심으로 등급을 새로 매기거나, 다시 품질을 따져 등급을 정한다면 그랑크뤼 클라세 61개 와인 중 족히 10여개는 탈락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고르는 보르도 와인, 그랑크뤼 클라세 등급만 너무 맹신하면 '바가지'를 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선임기자

▶다음 편은 '가짜가 더 대접받는 와인세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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