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큰 꿈을 품고 떠났던 유학길. 그러나 마약중독자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최경영(가명)씨는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면서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남 2녀였던 집에서 부모님은 ‘좋은 것’이라면 뭐든 최 씨에게 줬다. 최 씨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누나는 일찍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뛰어들었다. 아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최 씨의 교육비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최 씨는 대학교에서도 장학생으로 선발돼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다.
군 전역 후 복학을 앞둔 어느날, 부모님은 최 씨를 불러 앉혔다.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꺼낸 통장에는 꽤 많은 적금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유학을 보내려고 모아놓은 돈이다”고 설명했다. 평소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최 씨는 그 길로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 씨에게 마약이란 그저 뉴스에서만 접하던 멀고 먼 ‘범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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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호주는 한국보다 대마초와 코카인이 흔했고, 젊은 세대에서는 쉽게 즐기는 일종의 ‘기호식품’정도로 여겨졌다. 최 씨는 친구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마초에 손댔고 이후 코카인, 필로폰까지 투약하는 상황까지 갔다. 급기야 마약에 취해 도박까지 즐기게 됐고 헤어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었다.
부모님이 사 준 차까지 처분해 마약과 도박에 빠졌던 최 씨. 돈이 떨어지자 결국 부모에게 둘러대 서둘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애써 마약을 멀리하던 최 씨는 가까스로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내 유명 여행사에 취업했다 이내 사업을 시작했다.
해외여행이 유행처럼 시작되던 시기였고 그동안 여행사에서 근무하며 쌓았던 인맥을 토대로 최 씨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현지 호텔과 상점에서 들어오는 돈만 매년 ‘억’단위를 넘었다. 최 씨가 30살을 갓 넘겼을 쯤에는 이미 수십억대의 청년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룸살롱을 밥 먹듯 드나들던 최 씨는 화류계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렸다.
최 씨가 다시 마약에 빠지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최 씨는 한 대기업 회장의 아들과 친분을 맺었다. 최 씨는 이른바 재계의 거물인 VIP와 가까워졌고, 그의 모든 해외 일정에 동반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마약 중독자였던 VIP는 그런 최 씨에게 마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했고, 곧 최 씨에게도 권유하기 시작했다. 유학 시절, 처음 접했던 마약은 그렇게 다시 최 씨를 찾아왔다. 유혹을 참지 못한 최 씨는 자신의 혈관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었다.
이후 최 씨는 5년 동안 VIP와 함께 필로폰에만 매달리며 살아갔다. VIP와 태국으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태국은 호주, 한국보다 마약이 더 저렴했고 구하기 쉬웠다. 동네 곳곳에는 마약 중독자들이 넘쳐났다. 가진 건 돈 뿐이었던 최 씨와 VIP는 그곳에서 마약의 신처럼 군림했다.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화려한 생활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태국의 한 숙소에 머물고 있던 VIP가 필로폰에 취해 투신 자살을 한 것이다. 다음날 태국 방송에서는 VIP의 투신 소식이 연이어 보도됐고 한국에서도 취재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최 씨는 태국에서 추방당했다. 충격적인 상황에 최 씨는 3개월 간 필로폰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최 씨는 마약을 찾아 홀로 필리핀으로 떠났다. 사업을 벌어놓은 돈은 충분했다.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함을 달래기 위해 최 씨는 자신의 팔뚝에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주사기를 꼽았다. 마약은 최 씨의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갔다.
최 씨의 하루는 마약으로 시작해 마약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최 씨가 사업차 해외에 오래 체류한다고만 생각했다. 부모님도 누나도, 여동생도 최 씨의 마약 투약 사실을 알지 못했다. 최 씨는 “오늘 하루만 하고 내일부터는 이 필로폰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4년 동안 최 씨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동굴에서 마약에 중독돼 갔다.
최 씨는 결국 모아놓은 돈을 모두 탕진했다. 길거리에서 태국 현지인들에게 돈이나 음식을 구걸했고, 빈민촌에 숨어 들어 마약을 훔쳤다.
결국 최 씨는 가족들에게 연락했고 곧 비행기표를 구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가족들은 최 씨를 설득해 한 재활센터에 입소시켰다. 최 씨는 가족들과 약속한대로 이 센터에서 3개월 치료과정을 거쳐 퇴소했다. 최 씨는 퇴소 후 지인들에게 연락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다녔다. 다시 필리핀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최 씨에게 ‘절연’을 통보했다. 그럼에도 최 씨는 필리핀에서 6개월동안 필로폰에 젖어 들었다.
어머니는 끝까지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편지와 전화를 통해 귀국을 종용했다. 재활치료도 권유했다. 최 씨는 더러운 숙소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부모님, 대학 진학까지 포기하며 동생의 학비를 대줬던 누나, 어린 시절 오빠의 그늘에 가려 투정조차 부려보지 못했던 여동생.
최 씨는 마약이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파멸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울 속 최 씨는 창백했고 피부도 거칠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총명했던 눈동자는 이제 빛을 잃었다. 최 씨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한국으로 돌아가 마약을 끊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는 마약을 끊은 후 용서를 구하겠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최 씨는 다시 재활센터에 자진 입소했다. 다른 회복자들과 어울리며 최 씨도 단약(마약을 끊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극심한 단약 부작용으로 재활센터를 뛰쳐나가겠다는 유혹도 잘 견뎌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가족사진을 꺼냈다. 예민하고 폭력적이었던 성격도 점차 호전됐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 역시 최 씨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 씨는 어머니와 함께 신앙생활도 시작했고 동생들과 함께 여러 봉사활동도 다니고 있다. 마약 중독자인 최 씨는 그렇게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스스로를 되찾는 길을 걷고 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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