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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한국, 이란산 원유수입 내달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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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브라이언 훅 미 국무부 이란 특별대표 [사진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8개국에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대(對)이란 제재 예외 조치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당장 다음달 3일부터 이란산 콘덴세이트 수입이 어려워질 전망이어서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이 차단된 데 이어 이란산 원유까지 거래가 끊길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6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백악관은 2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초 만료되는 '제재 예외 조치(SREs)'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중동의 안전을 해치는 이란 정권에 대한 최대 압박 전략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이란과의 핵협정(JCPOA)을 파기했고 같은 해 8월부터 이란과 무역을 하는 제3국에 대해 제재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5일 단행한 2차 제재를 통해 원유 거래까지 금지했다. 다만 한국, 일본, 터키 등 8개국에 한해 이란산 원유의 제한적 수입을 6개월간 허용했다. 8개국 가운데 그리스, 이탈리아, 대만 등 3개국은 이미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한 반면 나머지 5개국은 일부 물량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우방국들의 연장 요청까지 불허하기로 한 것은 결사 항전을 고수하고 있는 이란에 대한 제재 고삐를 더 바짝 쥐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이달 초 이란 혁명수비대를 외국 정규군 가운데 처음으로 '테러지원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압박을 강화해왔다. 다만 미국도 국제유가가 급등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란 군부는 당장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해상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유 생산국들과 협조해 시장가격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며 "지난해에도 크루드 오일 생산량은 전년 대비 하루 160만배럴씩 증가했다"고 말했다. 일단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친미 성향의 산유국을 통해 원유 공급량 확대를 유도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란에 연간 수입량의 50% 이상을 의존해온 콘덴세이트의 경우 카타르, 호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만 생산하고 있어 수입처를 대체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에 섞여 나오는 초경질유로, 이를 가공하면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가 되는 나프타를 얻을 수 있다.

일반적인 원유에서 나프타 평균 생산 비율이 20%에 그치는 반면 이란산 콘덴세이트는 70~80%까지 가능해 수익성 확대에 유리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 복원 조치에도 180일간 한시적 면제 조치를 받은 국내 업체들은 올 들어 수입을 재개해 지난 3월 말까지 2076만4000배럴의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수입했다. 업체별로는 한화토탈이 829만2000배럴로 가장 많았고, SK인천석유화학(822만7000배럴), 현대케미칼(424만5000배럴)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 이란산 콘덴세이트 가격은 다른 지역 콘덴세이트와 비교할 때 배럴당 최소 2~3달러가량 저렴하다. 다시 수입에 제동이 걸려 시장에 풀리는 이란산 콘덴세이트 양이 줄어들 경우 콘덴세이트 가격이 올라 최종적으로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국내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이란산 초경질유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의존도가 높았던 게 사실"이라며 "카타르, 러시아, 노르웨이 등 대체 시장이 있지만 가격이 더 높기 때문에 이란산 수입이 금지되면 초경질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어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비용 경쟁력 약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산 초경질유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은 물론 품질 등 여러 면에서 이란산을 즉시 대체하긴 어렵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초경질유를 도입해 여러 실험을 진행 중이지만 미국산 초경질유는 이란산과 비교해 나프타 수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수송비도 높아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22일 0시(현지시간) 현재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2.33% 오른 배럴당 65.49달러에 거래됐다. 작년 12월 기록했던 52주 최저가(42.36달러)에 비하면 약 55% 올랐다. 이는 작년 말 유가 급락에 따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동반 감산한 데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영향 때문이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강두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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