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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만 못한 정치에···무대 오른 '코미디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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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선 당선 사실상 확정

정치 경력 전무한 신인이지만

정권 불신·경제난에 민심 이반

현직 대통령 3배差 득표율 압도

세제 등 개혁정책 실행안 부족

친러지역 분쟁 등 난제 수두룩

일각 "금융재벌 꼭두각시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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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한 30대 고등학교 교사가 하루아침에 60%대의 지지율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 앙칼진 욕을 섞어가며 무능한 국가의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모습을 한 제자가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면서 의도치 않게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이 믿기 어려운 드라마 줄거리가 현실이 됐다. 정치인을 모사하며 비꼬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정평이 난 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는 자신이 2015~2017년 출연한 정치 풍자 드라마 ‘국민의 봉사자(Servant of the People)’에서 연기한 모습 그대로 우크라이나의 차기 대통령 당선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 암울한 경제 상황과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은 정치경험이라고는 ‘연기’가 전부인 신예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다만 그가 현실에서도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잘해나갈지를 놓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2일 오후 4시(현지시각) 개표가 99.48% 진행된 상황에서 젤렌스키 후보는 73.23%를 득표하며 무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했던 페트로 포로셴코(53) 현 대통령(24.45%)보다 3배 가량 많은 표를 얻어 사실상 당선이 확정됐다.

줄곧 코미디언의 길을 걷던 젤렌스키의 삶은 그가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만든 프로덕션과 손잡고 지난해 3월 ‘국민의 봉사자’ 정당을 만들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드라마 인기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그는 자신의 정당이 기성정당 못지않게 연일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지난해 12월 이 정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선거 유세도 하지 않고 언론 인터뷰에도 가급적 나서지 않으며 ‘아웃사이더’ 정치인으로서 5개월의 여정을 지나온 그는 우크라이나의 ‘진짜’ 대통령 취임을 앞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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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인 ‘젤렌스키 돌풍’은 우크라이나의 암울한 정치경제 현실 때문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친러시아 반군과 정부의 무력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경제는 한없이 뒷걸음질쳤다. 한때 1,800억달러가 넘었던 국내총생산(GDP)은 2015년 절반 수준인 901억달러까지 떨어졌고 빈곤율은 30.3%에 달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9.8%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75억달러(약 20조원)의 금융지원을 받았지만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경제를 과점하고 있는 소수 재벌의 부정부패까지 만연하자 더 이상 기성정치인들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된 다수의 국민들이 ‘자루 속에 든 고양이(실체가 불확실한 대상)’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코미디언의 반란이 우크라이나 정계를 흔들었지만 그가 과연 무사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시각이 많다. CNN은 “‘아웃사이더’ 돌풍이라는 허니문은 일시에 끝나고 그 앞에 놓인 당면과제 해결이 절실하다”며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문제를 우선으로 꼽았다. 젤렌스키는 돈바스 지역의 무력분쟁을 종식시키고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 반환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노련미로 무장한 ‘스트롱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외교관계를 그가 어떻게 풀어갈지는 미지수다. 세제개혁 등 경제회생을 위해 쏟아낸 정책들도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어 말뿐인 공약(空約)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스라엘에 망명 중인 반(反)정부 성향의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젤렌스키 후보는 지난해 12월 콜로모이스키가 소유한 우크라이나 방송 채널 ‘1+1’을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콜로모이스키가 자신이 소유한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 프리바트방크를 포로셴코 정부가 국유화한 데 대해 보복하기 위해 젤렌스키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제기된 바 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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