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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박근혜 정보경찰, 불법 경계 넘나든 활동이 ‘자랑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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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7 정보경찰 공적조서 전수분석

2016년 김무성 ‘옥쇄투쟁’ 때 공천 탈락자 동향 보고

선거정보 빼곡…“성공적 총선 마무리 기여” 자평도

외교·노동 등 제한 없이 수집…공공기관 임원 평가도

“본질과 무관한 정보 수집, 불법 개입될 소지 있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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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육감 블랙리스트’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방해’ ‘비박(비박근혜) 의원 동향 보고’….

최근 검찰 수사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보경찰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관련기사: [단독] 박근혜 정부 정보경찰, ‘세월호특조위 제압 문건’ 만들었다) 경찰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근거로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해왔다. 이 법은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경찰의 역할로 규정해놓고 있는데, 경찰은 그동안 치안정보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경찰 업무와 무관한 가뭄 대책부터, 불법적 사찰에 해당할 수 있는 선거 동향까지 파악해 윗선에 보고해왔다.

<한겨레>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민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2013~2017년 정보경찰 수백명의 공적조서에는 이런 정보경찰들의 활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공무원에게 포상을 줄 때 근거로 활용되는 공적조서는 통상 본인이 초안을 만들고 상관 등이 일부 수정한다.

■ 그 많은 선거정보는 어디로 갔을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선거 정보다. 20대 총선이 있었던 2016년 대구경찰청 한 정보관은 자신의 공적조서에 “정당 공천 탈락자 반발 동향 등 사전 파악 관리, 안정적 치안정보 제공”이라고 적었다. 2016년은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친박·비박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친박 중심의 공천을 주도하자 비박으로 분류되는 김무성 당대표가 공천장에 당 직인을 찍어주지 않는 이른바 ‘옥새 투쟁’까지 벌어졌던 때다.

현역이었던 유승민 의원이 대구 동구을에서 ‘컷오프’(공천 탈락) 되며 당시 갈등의 핵으로 떠오르자 이 정보관은 “새누리당 공천과 관련하여 동구을 공천이 확정된 후 무공천 지역으로 확정된 대상자 ○○○ 후보의 지지자 100여명이 3.30 새누리당 대구시당을 방문한 김무성 대표 당사 출입을 저지하는 등 총선 관련 반발 인사들의 특이 동향을 사전 파악 보고”했다고 적었다. 그가 2016년 1월부터 보고한 총선 관련 견문보고서는 220여건이었다.

충남경찰청 한 정보관도 “20대 총선과 관련하여 150여건의 중요 정보를 처리하는 등 4·13 총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데 기여”한 게 공적이었다.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4년에도 경남경찰청 한 간부는 “정당별 공천을 둘러싼 당원 및 당사자들의 반발과 선거유세 상황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분석·대비”했다고 자화자찬했으며, 같은 해 전남경찰청 한 정보관은 “선거 기간 내 정보 상황보고 36건 보고 및 205건 접수, 선거일보 46건 보고 전파 등 선거 치안활동 수행”을 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당시 청와대나 여당의 선거 전략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검찰이 경찰청 정보국에서 압수한 자료들에도 지역 정치인 동향, 여론 분석 등 여당 선거 승리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 여럿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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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뭄 대책부터 외교·안보 정보까지

“BH(청와대)와 총리실에 전달하여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 “VIP(대통령) 국정 현안 추진 과정 등에서 나타나는 부작용과 지역 내 민심 분석 통한 정책자료 작성.” “새 정부 들어 생생한 정책자료를 작성·보고하여 효율적 국정운영이 되도록 뒷받침.”

공적조서들에는 대통령을 위한 이른바 ‘통치 정보’도 상당했다. 정보경찰도 공무원이고, 이들의 활동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거나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범위가 경찰 업무와는 거리가 먼 것들까지 포함하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2015년 경찰청 한 정보관은 “사회부처 담당(환경부, 여성가족부, 국방부 등)으로 세계 난민 구제 관련, 메르스 발생 이후 민심 및 정부 조치사항”을 담은 정보보고서를 생산했고, 경기경찰청 한 정보관은 가뭄 대책 보고서까지 만들었다. 서울경찰청 정보관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 사장, 임원에 대한 경영실적 및 근무태도 등을 수집. 정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공기업 경영성과 평가에 일조”했으며, 같은해 경남경찰청 한 정보관은 “기획재정부 등 정부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각종 주요 정책에 대한 추진 사항 전반을 지속해서 점검”했다고 강조했고, 경남경찰청 또 다른 정보관은 “대통령님의 각종 국내 행사 및 외국 순방 외교관 행보 제언”을 하기도 했다.

앞서 2014년 전북경찰청 정보관은 “국정원 선거개입 관련 여론 및 전망, 국립대학 병원 운영 실태, 자영업자 바닥 민심” 등을 보고했으며, 2013년 경찰청 한 정보관은 “외교·안보 노동분야 현안에 대한 시중 여론을 분석”해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 조직 이익에 복무하는 정보경찰

사회 곳곳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던 정보관은 경찰 조직의 이익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2017년 경찰청 정보관은 “탄핵정국 주요 언론사 및 오피니언과 접촉을 통한 정책 제언 수집 및 촛불집회 관련 경찰 비난 보도 최소화로 사회 안정화 기여”를 했으며 2016년 한 정보관은 “경찰 관련 언론보도 순화 활동”과 “경찰의 날 등 각종 경찰 행사 관련 생방송 협조 등 경찰 발전을 위해 기여”했다고 적었다.

2015년 경찰청 정보관은 “국가 아르앤디(R&D·연구개발) 예산 주무부처인 미래부(연구개발예산투자조정국) 예산 심의라인(담당 국·과장)을 지속적으로 접촉, 우리 청 연구개발 계속, 신규 과제 설명 및 설득 활동 등을 통해 신규 과제 1건 등이 추가로 반영되어 전년 대비 연구개발비 예산 74.1% 증액 달성”한 것이 공적이었다. 경찰청 예산을 따는 데에도 주무 부서가 아니라 정보경찰이 투입된 것이다. 2015년과 2016년 경찰의 날 대통령 연설문 작성을 공적으로 내세운 경우도 있었다.

한편, 최근 <한겨레> 보도로 과거 정보경찰의 사찰 등 의혹이 불거지자 경찰청 정보국은 14일 “과거 정보경찰의 일부 부적절한 활동에 대해서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지난해부터 정보경찰 개혁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보경찰의 과오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경찰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경찰이 자신의 활동의 본질과 무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악용되거나 불법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무분별한 정보 수집을 제한하는 법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현재 발의된 경찰 개혁 법안은 오히려 과거 불법이었던 활동에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주어 양성화하겠다는 측면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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