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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영화속 장애인은 인간승리? 함께사는 이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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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는 흔히 장애인을 동정, 시혜의 대상으로 보곤 합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선 장애인도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죠."

지난 18일 만난 이상엽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03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17회를 맞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소개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내 모 건설사에서 근무했던 이 집행위원장은 제주도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삼달다방'의 방장이기도 하다. 그는 6년 전부터 영화제 일을 돕고 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국내 최대 규모 순수 장애인 인권 영화제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장애인이 연출·제작에 직접 참여한다.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4월 19일 막을 올린 제17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진행된다. '사다리를 잇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 8편의 작품 등 모두 12편이 무료로 관객들을 만난다. 상영작은 모두 한글 자막과 수어 통역이 화면에 들어간다. 개·폐막작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도 지원된다.

"우리가 낮은 곳과 높은 곳을 오르내릴 때 사용하는 도구가 사다리입니다. 사다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장애인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에 저항해 보다 인권적인 환경을 만들어간다는 것 등 다양한 것을 상징하기에 '사다리를 잇다'를 주제로 정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바람도 담겼죠."

이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에서 선보일 작품 중 개막작으로 선정한 다큐 형식의 작품인 '애린'과 폐막작인 '장애인 차별의 역사에서 차별금지의 역사로! -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0년의 기록'이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애린은 제주도에 살던 장애인이 상경한 뒤 서울에서 살면서 자신이 겪는 여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장애인의 삶 자체를 영화에 담았는데 다큐멘터리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폐막작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역사를 담고 있어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이후 10여 년의 시행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우리는 보통 법이 제정돼 제도화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법 제정 후 장애인의 실질적인 삶이 변화했는지 이 영화를 통해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소규모로 열리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감독과의 대화'다. 작품 상영이 끝난 후 관람객과 감독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집행위원장은 "영화가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기도 하는데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게 된다"며 "관객들이 자신이 느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정보를 나누면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기존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장애인을 불쌍하게 그리거나 인간승리로 묘사하는 기존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멀쩡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저주를 받듯 갑자기 장애를 가지게 되고 이후에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불행한 인간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래선 우리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없어요. 장애인도 당당한 삶의 주체고 사회적 지원이 있으면 얼마든지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영화제를 매년 꾸준히 열고 있는 것도 영화를 통해서 장애 혹은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길 희망하기 때문이죠."

이 집행위원장은 20년 가까이 영화제를 열면서 출품작이 늘어나는 등 규모는 커졌지만 여전히 후원금이 충분하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금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와 같은 헌신적인 분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평등을 향한, 기본적인 인권의 가치를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죠. 이를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도 함께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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