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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낙태죄 폐지 입법 논의 시동…‘안전한 임신중지’ 법제화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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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모자보건법 개정범위 등 쟁점

민주당에서도 논의 시작

“규제보다 ‘안전한 임신중지’지원으로 관점 전환 필요”


한겨레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기뻐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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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반영한 입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15일 처음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16일 오전 관련 시민사회 인사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르면 다음주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법무부와 논의해 형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현행 형법과 예외적 허용 사유를 명시한 모자보건법을 어떻게 개정하느냐다. “태아의 생명 보호는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임신중절을 기간에 따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정책적, 제도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형법 개정 범위

우선 쟁점은 ‘낙태의 죄’를 명시한 형법 27장 개정 범위다. 헌재가 위헌성을 판단한 ‘자기낙태죄’(269조 1항)와 의사 등의 ‘동의낙태죄’(270조 1항) 조항을 폐지해도 임신부의 동의없이 임신중절을 한 자를 처벌하는 ‘부동의낙태죄’(270조 2항)가 남는다.

여성계는 해당 조항까지 포함해 “형법 27장 자체를 들어내야 한다”고 본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부동의낙태도) 상해죄 등 기존의 형법 체계 안에서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형법 27장의 보호 법익이 ‘태아의 생명보호’였던 만큼,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라고 밝힌 헌재 결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27장의 모든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의낙태죄’ 조항이 목적과 달리 임신중절 자체에 대한 규제의 도구로 오용될 가능성도 우려한다.

반면 이정미 의원의 형법 개정안은 현행 ‘부동의낙태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꿔 존치하고, 처벌 수위를 높였다. 해당 시술을 할 경우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받도록 하는 조항도 그대로 뒀다.

■사회·경제적 사유 추가

임신중절의 허용사유로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는 식의 법 개정은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를 좁힌다는 우려도 있다. 이 의원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는 임신부의 요청만으로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하되 14주에서 22주 사이에는 현행법의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더했다. 이 때 사회·경제적 사유는 ‘임신 유지나 출산 후 양육이 어려운 경우’로 명시하고 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김광수 의원은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되 대통령령에 일임하지 않고 법률로 구체화하는 방향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사유를 명시한다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자격’을 결국 국가가 정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제이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가난하거나 어리거나 비혼이면서 아이를 낳는 건 ‘무책임한 일’이란 식의 낙인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고 입증할 것이냐도 문제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제적 상황, 임부의 연령, 자녀의 수 등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일괄 적용하기에 타당한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며 “임신중지의 유일한 기준은 임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안전성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 후기 임신중절

헌재가 결정문에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로 명시한 ‘임신 22주’ 이후의 후기 임신중절을 어떻게 법에 구체화할 것이냐도 쟁점이다. 이 의원의 개정안은 임신 22주 뒤엔 보건의학적인 이유로 임신부의 건강을 해칠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만약 이를 위반해 시술을 한 의사 등에겐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형법상 처벌 대신 행정처분으로 변경했지만 규제의 틀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임신중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일수록 후기 임신중지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규제가 아닌 입양, 상담, 지원 등 다른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이를 입증하거나 주변에 알리는 것이 어렵다 보니 임신 후기에 임신중절이 필요한 경우가 꽤 있다. 청소년이나 장애인 피해자일수록 임신 여부를 빨리 인지하지 못 할 가능성이 더 높다”며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박수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22주 이후에 대해서도 임신부의 요청에 따라서 하되 임신부와 태아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절이 가능한지 등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관계, 피임, 임신, 출산 등을 둘러싼 재생산권을 보장·지원하는 방향으로 모자보건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컨대 ‘인공임신중절 예방 등의 사업’을 규정한 현행 모자보건법 12조를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지원 등의 사업’을 위한 조항으로 개정하고,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도 차별없이 안전한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공공의료서비스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등을 명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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