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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매경이 만난 사람] 돌아온 中企 대통령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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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전병득 중소기업부장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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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장실. 김기문 회장을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회장은 왜 또 하신 겁니까?"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다시 일하러 왔습니다."

360만 중소기업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중기중앙회장직이 그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3월부터 2015년 2월까지 23·24대 회장을 연거푸 맡았다. 4년 공백을 깨고 다시 중기중앙회장직에 도전했을 때 다들 반신반의했다.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기어코 당선되자 "역시 김기문"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다시 일하러 왔다"는 그의 말은 지난 2월 26대 중기중앙회장 선거에 당선되며 한 첫 일성이다. 그때부터 그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중소기업계를 위해 4년 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어렵게 온 만큼 '몸을 바친다는 각오'로 일할 겁니다."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손에 힘이 꽉 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 김 회장은 과거 중기중앙회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다. 그것이 이번에 다시 회장직을 맡게 된 든든한 배경이 됐다. 지쳐 힘이 빠진 중소기업계는 노란우산공제 출범, 홈앤쇼핑 설립, 중소기업DMC타워 준공 등이 과거 김 회장 재임 중에 이뤄진 사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중기 적합업종 선정,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대기업집단 부당 내부거래 금지 등을 이슈화하며 중소기업을 위한 성과를 낸 기억도 뚜렷하다. 그때 중소기업계에는 '그가 나서면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 현안으로 어느 때보다 힘든 중소기업계가 김 회장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기중앙회 조직부터 싹 바꿨는데.

▷취임 후 첫 인사를 단행하며 관리자급 자리를 20여 개 줄였죠. 일하는 사람보다 보고받는 사람이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본부장급 임원 자리도 2개 없앴습니다. 관리자보다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조직이 가벼워지면서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인력난 문제, 인건비 문제, 대기업과 상생 문제 등 현안에 대해 각 부서가 해결책을 짜내느라 '일하는 조직'으로 체질이 바뀌고 있습니다.

―청년 일자리를 급한 과제로 꼽았는데.

▷전통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은 일할 청년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청년층 고용이 원활하다면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누가 고용하고 싶겠습니까. 젊은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입사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일자리 미스매칭'이 문제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와 청년이 가고 싶어 하는 기업 사이에 임금이나 근무 환경 등 차이가 큽니다. 중기중앙회가 나서 청년이 일하기 좋은 미래 유망 기업을 골라주려 합니다. '청년이 일하기 좋은 중소·벤처 100곳'을 뽑아 일자리 매칭사업을 벌일 겁니다. 또 벤처가 클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유망한 벤처에 중소기업을 고객으로서 연결시켜줘 벤처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는 겁니다. 벤처가 크면 매출이 늘고 결국 청년 일자리도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중기 1곳당 1명 더 채용하기' 식의 캠페인은 통하지 않습니다. 일자리도 스마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표준원가제도' 도입을 내세웠는데 내용은.

▷헌법 123조 3항에는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야전(시장)'에 나가 싸울 때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하지만 현재 정부의 '최저가 입찰제도'는 중소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대기업 마진이 10% 나면 납품 중소기업 마진은 2~3%에 불과합니다. 중소기업도 10% 정도 이익을 내야 신제품 개발 등에 투자할 것이 아닙니까. 원가 구조를 잘 아는 대기업이 이익을 다 챙겨가면 중소기업은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표준원가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업계와 학계·전문가 등이 모여 주요 제품에 대한 표준단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정부 용역사업부터 주요 제품의 단가표를 적용하면 대기업도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행태는 보이지 못할 것입니다.

―취임 후 현장을 많이 돌아봤는데.

▷현재 각종 노동 현안으로 인해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노동 정책이 경제 정책과 함께 가야 하는데 지금은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져 실시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사실 되돌리기 힘듭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숨통은 틔워줘야 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적응하기 어려운 기업을 위해 최소한의 보완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거죠. 탄력근로제를 6개월만 확대하면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도 발생할 수 있으니 최대 1년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금형업체 등 뿌리 제조업은 제품 납기가 생명입니다. 국내 금형업체는 같은 제품을 일본보다 40%가량 빨리 만드는 것이 최고 경쟁력입니다. 납기가 가장 큰 경쟁력인데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걷어차고 있습니다. 취임 후 정부·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 같은 노동 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가업 승계에 대해 사전 증여가 가능한 방향으로 입법발의가 돼 있고, 담합으로 처벌하던 것도 일부 공동판매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박영선 장관이 새로 취임했는데.

▷중소·벤처업계와 소상공인들 기대가 높습니다. 정치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에 대한 입법과 발언도 많이 한 것으로 압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주도적으로 조율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추진력 있는 업무 능력이 필요한 곳이죠. 신임 장관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차근차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갈 생각입니다.

―1대 개성공단기업협회장으로서 남북 경협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개성공단은 빨리 재개하면 할수록 남북 모두에 좋습니다. 남북 경제협력은 시너지 효과가 큰 사업인 만큼 향후 제2·3의 개성공단도 나와야 합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공단 폐쇄로 얼마나 힘든 상황에 내몰려 있는지 지속적으로 호소할 생각입니다.

"대통령 네명 겪어보니…기업할 맛 나게하는 분이 최고"
신뢰 경영으로 로만손 키워
日자민당 간사장 '축하난' 눈길

매일경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역대 중앙회장 가운데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3선에 당선됐다. 임기 4년인 중기중앙회장을 세 차례 역임하다 보니 임기가 겹치는 대통령도 4명이나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할 때부터 인연이 돼 2007년 23대 중앙회장에 당선되고 1년가량 임기가 겹쳤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2년가량 임기가 겹쳤으며, 올해 2월 26대 중기중앙회장에 당선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3년 반가량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손발을 맞추게 됐다. 그에게 '경험한 대통령 가운데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가장 이해도가 높고 소통이 잘되는 분'이 누구인지 물었다.

김 회장은 "문 대통령이 중소기업 정책만큼은 가장 성공했으면 하는 희망이 크다"며 "최근 신남방 정책에 대해서도 중기 입장에서 보면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사업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은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김 회장은 "기업할 맛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통령을 중기인들은 최고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중기인들과 소통도 잘해 여전히 존경하는 중기인이 많다"고 전했다.

사업가로서 김 회장은 남을 따라하지 않는 '독창성'과 거래처와의 '신뢰'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런 원칙이 종잣돈 5000만원으로 시작한 '로만손' 시계가 연 매출 1000억원을 웃도는 '제이에스티나'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사업 초기 로만손은 잘 벗겨지지 않는 도금시계와 시계유리를 보석처럼 가공한 '커팅 글라스'로 국내외에서 크게 히트했다. 김 회장은 "그전에 없던 독창적인 제품을 위해 도금 장인과 유리가공 장인을 찾아가 부탁을 드렸다"며 "커팅 글라스 시계는 500개 한정품이 2~3일 내에 다 팔려 연예인도 없어서 못 살 정도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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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하던 로만손도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위기를 맞았다. 당시 수출의 70~80%가량이 중동지역에 집중됐는데, 은행에서 분쟁 지역은 수출 신용장(LC)을 발행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끝까지 믿고 거래해준 터키 바이어는 이후 둘째 딸 결혼식 때 축하 선물을 보내오는 등 끈끈한 관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신뢰를 중시하는 원칙이 어려울 때 빛을 발한 일화도 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정부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독도 문제로 한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 박람회 참여 신청이 저조했던 것. 김 회장은 박람회 유치위원으로서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에게 SOS를 쳤다. 니카이 간사장은 자민당 내 2인자로 김 회장이 2009년 중소기업 대표단을 이끌고 방일했을 때 당시 경제산업성 대신으로서 만찬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김 회장은 "니카이 간사장이 흔쾌히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한시름 놨다"며 "며칠 지난 후 일본 기업 10여 곳이 참여한다고 신청해 왔다"고 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김 회장이 중기중앙회장에 취임하자 가장 먼저 축하 난을 보내줬다.

▶▶김기문 회장은…

△1955년 충북 증평 △1988년 로만손 대표 △1988년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3회 연임) △2006년 개성공단기업협의회장 △2008년 충북대 명예경제학 박사 △2007~2015년 23·24대 중소기업중앙회장 △201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2016년 제이에스티나 회장 △2018년 진해마천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 △2019년 26대 중소기업중앙회장

[서찬동 기자 정리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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