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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강원산불]도심 덮친 ‘화마 쓰나미’에 시민들 ‘아연실색’…참혹했던 고성·속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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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연기 가득찬 도심 도로…나무·건물·차량 할 것 없이 덮친 화마

아파트·주유소 인근까지 옮겨붙은 불씨에 주민들 '공포의 4월4일'

5일 오전 6시부터 헬기·소방장비 투입해 본격적 진화 작업에 총력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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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고성·속초)=이관주 기자, 유병돈 기자] '아수라장' 대형 산불이 난 강원 속초시ㆍ고성군 일대는 그야말로 참혹 그 자체였다. 재난영화에서나 볼법한 연기가 도심을 가득 메웠고,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5일 오전 1시께 찾은 속초시 장사동ㆍ노학동 일대. 거센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뿌연 연기가 왕복 6차선 도로인 미시령로를 가득 메워 마치 안개가 잔뜩 낀 날을 연상케 했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스러진 상황. 한 나무를 태운 화마는 곧바로 옆으로 옮겨져 또 다른 피해를 낳고 있었다. 불길이 닿은 가건물들은 남김없이 재로 변했다. 유통창고 앞에 주차돼 있던 트럭 등 차량 수대도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주민들은 뜬눈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 밤을 버텨내고 있었다. 마을회관과 초등학교, 바닷가 등으로 피신한 이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틀 전 속초로 이사를 온 박모(32)씨 가족은 짐을 채 풀기도 전에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박씨는 "어제 이사를 왔는데 집 앞까지 불길이 옮겨 붙었다"면서 "가지고 온 짐을 그대로 꺼내 급하게 대피하는 중"이라고 허탈해 했다.


위험한 것은 단순 불길만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불씨 수십, 수백 개가 도로와 풀숲, 나무 등으로 튀어 새로운 불길로 이어졌다. 강풍을 타고 날아온 듯 도로 주변에서도 손쉽게 불똥이 보일 정도였다. 시민들은 "불이 날아다닌다", "손댈 수가 없다"며 좌절했다.


시민들의 말처럼 강원 일대를 덮친 화마는 마치 '쓰나미(tsunamiㆍ순식간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파도)'를 연상케 했다. 강풍을 등에 업은 산불과 잿더미, 연기는 당장이라도 도심 전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한 기세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도로 옆 주유소 코앞까지 불길이 번지면서 아슬아슬한 상황도 연출됐다. 주유소 옆 컨테이너가 불타오르자 소방대원들은 불길이 도심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샘 진화작업에 나섰다. 경찰과 방범순찰대 대원들은 주요 진입도로를 통제하며 소방차가 다니는 통로를 확보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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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불길은 아파트 앞까지 다다랐다. 화염과 건물의 거리는 채 30m도 되지 않았다. 소방대원은 물론 아파트 관리인들까지 건물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와 불길을 향해 쏘아댔지만, 거센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속초시가 보낸 대피 안내 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부랴부랴 짐을 꾸렸다. 차량으로 향하면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뒤를 돌아보며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피소로 향하는 길도 아비규환이었다. 차량 불빛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교동초등학교로 향했다.


아파트에서 불과 1㎞가량 떨어진 곳에서도 불과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도시가스 공급업체와 액화석유(LP)가스 충전소 인근까지 산불이 내려오면서 대형 폭발사고가 우려됐다. 소방대원들의 필사적인 저지ㆍ진화 작업 끝에 다행스럽게도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악몽 같은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은 속초의 모습은 처참했다. 도심을 빛내던 벚나무와 잣나무들은 검게 그을렸고, 마을 뒷동산은 잿더미로 변했다. 대피소를 빠져나와 다시 아파트로 향하는 주민들의 표정에는 허탈함이 묻어났다.


이날 오전 6시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화 작업을 알리듯 시내 곳곳에서는 헬기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시내 도로도 전국에서 모여든 소방차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진화 작업에 속속 투입됐다. 그러나 전날부터 고성과 속초를 덮친 화마는 여의도 면적에 육박하는 250㏊의 토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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