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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아던 효과? 테러 후 뉴질랜드 이민 희망자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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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일로부터 열흘간 이민 희망자 33% 증가

“아던 총리의 공감 리더십 영향도” 분석

아던 “증오·공포 바이러스 못 떨쳤으나

우리는 치유 방법 찾는 나라 될 수 있다”

아내 잃은 무슬림 “테러범 용서했다” 연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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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테러로 50명이 사망하자 ‘테러 청정국’ 뉴질랜드의 이미지가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테러 직후 이민 희망자가 급증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9일 현지 매체 <스터프>를 보면,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발생일인 이달 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뉴질랜드 이민국에 접수된 이주 희망 신청은 6457건으로 그 전 10일(4844건)에 비해 33% 증가했다. 증가 폭이 가장 큰 이주 희망자 거주국은 미국으로, 테러 전 674건에서 테러 후 1165건으로 73% 늘었다. 영국도 505건에서 753건으로 49% 증가했다.

무슬림이 주류인 나라들의 이민 신청 건수 증가율은 더 크다. 자국 출신 이민자 9명이 희생당한 파키스탄은 65건에서 333건으로 412%, 말레이시아는 67건에서 165건으로 146% 늘었다.

뉴질랜드 사상 최악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이민 희망자가 오히려 증가한 것에 대해 <스터프>는 저신다 아던 총리의 ‘공감 리더십’이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던 총리는 사건 직후부터 무슬림 희생자들에 대해 “그들이 우리”라고 말하며 이민자 사회를 보듬고 백인 민족주의에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번 테러에도 쓰인 반자동 소총 판매를 금지해, 대형 총기 사고가 잇따르는데도 총기 규제에 미온적인 미국 정부와는 확연히 다르게 대처했다. 무슬림 사회를 위로할 때는 히잡을 쓰고, “뉴질랜드를 인종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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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던 총리의 행보는 인종·종교 간 혐오를 부추기겠다는 테러범의 의도를 좌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러범은 범행 직전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선언문’에서 “세계에서 (무슬림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고 했다. ‘이민 천국’ 뉴질랜드에서 테러를 일으켜 무슬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백인 민족주의를 더 자극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백인 민족주의 전사’로서 유명세를 노리던 테러범의 의도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아던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페이스북은 27일 백인 민족주의 관련 콘텐츠를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던 총리의 행보는 관용의 나라로서 뉴질랜드의 이미지를 지켜내고, 그 자신을 백인 우월주의에 맞서는 대표적 지도자로 자리매김시켰다.

이처럼 종교·문명 간 불화를 심화시킬 뻔한 이번 테러는 아던 총리의 적극적 포용 행보 덕에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뉴질랜드 무슬림 사회는 아던 총리를 극찬하고 있고, 파키스탄에서는 히잡을 쓴 그의 사진을 현수막으로 내걸고 추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29일 사고 현장인 알누르 모스크 근처 공원에서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도식에서 아던 총리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던 총리는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아랍어 인사를 다시 건넸다. 이번에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망토를 걸친 그는 “우리는 증오와 공포의 바이러스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테러로 아내를 잃은 파리드 아흐메드는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라 “난 화산처럼 분노하는 심장을 갖고 싶지 않다”며 “범인을 용서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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