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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유럽 에어버스 추격에… 보잉사, 추락한 737 맥스8 2배속 졸속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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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3일 에티오비아 아디스아바바의 볼레국제공항에 보잉 737 맥스(MAX) 8 기종이 정차해있다. 아디스아바바=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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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개월 사이 총 346명의 인명 피해를 낸 ‘보잉 737 맥스(MAX) 8’ 추락 사고의 배경에 글로벌 양대 항공기 제작사 간 과도한 경쟁이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 에어버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잉사가 해당 기종 개발을 지나치게 서둘렀고, 조종사 교육도 허술하게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번 추락 참사가 인재(人災)였을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문제의 시작은 보잉사 경영진의 안일함이었다. NYT에 따르면 100년 역사를 지닌 보잉은 당초 1970년 설립된 에어버스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다. 에어버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저가항공사들을 상대로 항공기를 대량으로 팔아 치우고, 2008년 보잉보다 더 많은 항공기를 판매했을 때도 반짝 성공으로 치부했다. 2010년 에어버스가 ‘A320네오(neo)’라는 고연비 항공기를 내놓자 제임스 알바 보잉 사장은 직원들에게 “에어버스는 항공사들이 원하지 않는 비행기를 만드느라 예산을 과도하게 쓰고 있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넘게 보잉의 주요 고객이었던 미국 아메리칸항공이 “에어버스와의 계약이 임박했다”고 전하고 나서다. 보잉은 서둘러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해 에어버스를 눌러야 했다. 신형 항공기를 만드는 데는 10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기존 737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겠다고 선포했다.

이후 보잉사 내부에선 말 그대로 ‘경주’가 시작됐다. 737 MAX의 예비 디자인은 단 6개월 안에 완성됐다. 여기에 참여한 한 기술자는 NYT에 “시간표가 매우 압축돼있었다”며 “그냥 ‘빨리, 빨리, 빨리(go, go, go)’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보잉사의 전직 디자이너는 “당시 내가 속했던 팀은 1주일 안에 기술도안 16개를 내놓곤 했는데, 이는 평상시보다 2배 빠른 속도”라고 했다. 배선 작업에 참여했던 기술자는 “디자이너들이 대충 그린 설계도를 갖고 오곤 했다”면서 “지금도 737 MAX의 내부조립 디자인에는 특정 배선을 설치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도구, 불완전 접속이 이뤄질 상황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이 누락돼 있다”고 폭로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조종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 및 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항공기를 개발해 팔아야 했던 보잉의 중점 사안은 ‘기존 조종사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없는’ 항공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새롭게 적용된 소프트웨어에 대해선 조종사들이 추가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난기류 상황에서 항공기의 급하강을 막아주는 ‘조종특성 향상시스템(MCAS)’으로, 현재 이번 추락사고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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