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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유규철의 남극일기] 극한의 고립 환경…가장 힘든 건 사람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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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보고기지 바깥에 설치된 기상 관측 장비. [사진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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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기지 인수·인계


5차 월동대가 기지 정문에 도착하니 4차 월동대와 하계 연구원들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인사한다. 일단 모든 대원이 기지 2층의 식당에 모여 앉았다. 처음 방문한 대원들은 이리저리 눈길을 보내는데 어색하거나 신기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고 나서 모두 핸드폰을 쥐고 가족들에게 소식 전하기 바빴다. (남극대륙이지만, 기지 내에서는 와이파이를 통해서 인터넷에 연결된다) 이미 뉴질랜드에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건만 모든 가족이 걱정하는 것은 남극에 잘 도착했는지 여부일 것이다. 나도 아내에게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하니 몇 번이나 ‘조심하라’와 ‘보고 싶다’는 말뿐이다.

이제 첫발을 내디디고 머나먼 13개월을 여기서 지낼 생각 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이런저런 상념의 시간도 짧게 끝나고 4차 월동대 이형근 총무의 기지 소개와 생활 수칙을 들은 뒤에 다음날부터 있을 인수·인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푹 쉬라는 말과 함께 각자 배당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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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기지 기상타워 꼭대기에서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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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장보고 기지에 모인 71명의 한국인들


10월 28일 아침, 기상과 함께 모든 월동대원이 식당으로 모였다. 대원별로 서로 마주 앉아 정식 인사와 소개를 끝으로 4차대 총무의 인수·인계 과정을 설명 듣고 바로 인수·인계를 시작하였다. 4차대가 우리에게 넘길 많은 인계 과정이 겨우 4일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보고 기지의 총 숙박 인원은 65명이지만 5차대가 도착한 후 벌써 71명으로 많은 인원이 기지에 체류 중이다.

11월 5일 4차대가 남극을 떠나는 비행기 일정에 맞추려면 인수·인계 시간이 빠듯하다. 아! 그래도 그렇지 4일은 너무 촉박했다. 극지 경험이야 많아도 월동대 대장직이 처음인 나도 난감한데 다른 대원들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묵묵히 따라주는 5차 대원들의 굳건한 눈과 의지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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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기지 본관동 내 온실. 이곳에서 자라는 상추 등 채소는 장보고기지 대원들의 소중한 음식재료가 된다. [사진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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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기지엔 의사·요리사에 중장비 기사도…


월동대는 크게 총무반(총무ㆍ통신ㆍ의료ㆍ조리), 유지반(기계설비ㆍ냉동설비ㆍ발전ㆍ안전ㆍ전기ㆍ중장비)과 연구반(기상ㆍ대기ㆍ해양ㆍ생명ㆍ우주과학ㆍ지구물리)으로 나누어져 있어 분야별로 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나도 마찬가지로 4차 임정한 대장과 함께 기지 전체를 둘러보면서 건물 소개도 소상히 받고 4차대가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였다. 또한, 4차대가 떠나기 전까지 저녁 후에는 임정한 대장과 단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월동기간 내내 즐거웠던 일과 고충을 담담하게 들었다. 여기 오기 전에도 월동대장직을 끝마쳤던 동료의 고충과 고민을 많이 들었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5차대 정식 출발을 앞두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극한의 추위와 싸워가면서 일해야 하는 대원들의 고충은 해결하기 어렵지 않다.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은 안전을 위해 하지 않으면 되고 해야 할 일은 월동대 전체가 합심해서 하면 된다. 모두 삽을 들 때도 있고 짐짝을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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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기지 4차 월동대 임정한(왼쪽) 대장과 유규철 대장이 장보고 기지 내에서 업무 인수인계 겸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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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도 화성도 가장 힘든 건 서로간 갈등


모든 월동대가 육체적으로 거들어 할 일이 극한 환경에서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가장 어려운 고충은 단합이다. 사회에서 각자 개성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고 서로 이해하거나 회피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기지는 극한의 고립된 환경으로 서로 이해하고 어울리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진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화성 이주 프로젝트의 하나로 화성과 똑같은 고립된 환경을 재현하여 실험한 결과 가장 큰 문제는 서로의 갈등이었다. 결국 서로에게 주는 상처가 기지 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였고 어떤 대장도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1월 1일 인수·인계식이 끝나고 3층 대장실로 들어와서 순간 멍해졌다. 일단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한동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11월 2일 월동대와 조회 이후 여기저기서 분주한 움직임에 1층부터 4층까지 나도 한지현 총무도 오르락내리락한다. 하계 연구원들도 외부 활동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니 헬기가 연구원들을 태워 연구 지역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남극에서 가장 큰 사고는 항공기나 헬기 사고 또는 화재다. 장보고 기지는 4대의 헬기를 운영하는데, 멀게는 수십㎞를 오고 간다. 예전 아라온호 탐사에서 헬기를 운영했을 때 매우 위험했던 일이 자꾸 떠올라 항상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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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기지 4차, 5차 월동대원들이 야외 인계인수식이 끝난 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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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마음, 오는 마음…


11월 5일 4차 월동대가 떠나는 날이다. 4차 월동대는 마지막으로 마음에 기지를 담으려고 사진도 찍고 얼굴에 화색이 가시질 않는다. 담담한 마음으로 지켜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5차 대원들은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일부는 같이 사진도 찍고 일부는 연신 잘 가라며 웃고 있지만, 실상은 울적한 마음이었으리라. 4차 월동대를 실은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멀어지는데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도 언젠가 이날이 오겠지’. ⑤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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