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세계의 분쟁지역] 물의 사유화로 인한 아마존강의 위기… ‘블루 골드’가 된 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올해 1월 25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브루마지뉴 지역의 광산 폐수 저장용 댐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한 지 4일째를 맞은 28일, 한 지역 원주민이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파라오페바강을 황망한 듯 바라보고 있다. 브루마지뉴=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물은 인류의 삶을 지속하고, 경제 발전과 자연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필요한 ‘지속가능해야 하는’ 핵심 자연 자원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물이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된 지는 오래다. 시장 가격의 원리에 따라 분배되고 관리돼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물은 단순히 이런 시장 논리에 따라 경제적 ‘상품’으로서 의미만 갖는 게 절대 아니다. 자연 상태의 물은 지역과 지역, 국경과 국경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며 그 소유와 관리를 놓고 정치생태학적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1846-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 이후 양국의 국경이 된 리오그란데(Rio Grade)-콜로라도(Colorado) 강과 관련, 양국 사이에 공유하천 관리와 물 분배 분쟁이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 보고서는 이 대륙의 물 분쟁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짚는다. “6억에 가까운 인구, 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인구증가율, 이에 따른 토지ㆍ에너지 사용량 증가와 80%에 달하는 가파른 도시화율….” 이어 보고서는 “이 문제들은 역내 자연 자원, 특히 인류의 삶에 가장 직결되는 물 자원에 대한 압력을 심각할 정도로 증가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물 관리 방식이 시급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세계 담수자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대륙으로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아마존 열대 우림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이 위기에 처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더해 개별 남아메리카 국가 정부들의 물 공급 능력 부족과 낮은 수준의 분배 서비스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물에 접근하고 이용하는 데 불평등을 겪고, 분쟁을 낳고 있다.

◇ 다국적 기업 사유화로 상품이 되버린 수자원
한국일보

2016년 11월 볼리비아에서 2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한 가운데, 수도 라파스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수자원 안정(Agua Salud)’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라파스=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물 전쟁’으로 불리는 분쟁 사례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이 지역을 지배했을 때는 물 관리·분배의 소유권, 즉 ‘누가’에 분쟁의 방점이 찍혀있었다. 1990~2000년대 더욱 광폭해진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물의 사유화, 즉 시장경제 논리에 근거해 다국적 기업에 의한 민영화가 이루어지자 물 분쟁은 더욱 극심해졌다. 가격 인상은 물론이고 다양한 형태로 물의 이용과 접근에서 불평등이 커지면서 물은 점차 ‘파란 금(blue gold)’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대다수 라틴아메리카 도시들은 오폐수처리 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위생과 질병 문제, 생활환경 오염으로 빠르게 토지·강·산림·해양 주변 생태환경에도 악영향을 줘 이 지역의 총체적인 자연환경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국적 기업에 의한 사유화와 가격 인상, 빠른 도시화와 위생 및 사후처리 시스템의 부족, 환경오염 증가에 더해 오늘날에는 기후변화 요소까지 더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6년 남미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물 전쟁이 기후변화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안데스 산맥에서 융빙(빙하가 녹는 것) 현상이 빠르게 일어나는 한편, 25년 만에 가장 큰 가뭄이 발생하면서 볼리비아 국민들은 생활의 필수 자원인 물을 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일보

멕시코 서남부의 미초아칸주의 한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꾼들이 방금 딴 아보카도를 트럭으로 옮겨 싣고 있다. 미초아칸=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미 최대 빈곤국이자 농업국가인 볼리비아에서 물은 농업에 큰 영향을 줄뿐더러, 농업 종사자들의 경제적 삶 자체를 파탄내기도 한다. 볼리비아를 포함해 멕시코, 칠레, 페루 등 대표적인 농업 국가들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아보카도 플랜테이션 농업은 물 분쟁의 주범으로 부상했다. 아보카도 2~3알을 얻는 데만 272리터의 물이 쓰인다는 사실이 2016년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녹색 금’으로까지 불리며 수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비판받는 상황이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일반 시민들과 소규모 농업종사자들과 달리 정작 이런 플랜테이션 농업을 독점하고 있는 세력들은 대지주이거나 대농장주, 혹은 다국적기업들로 이들의 물의 독점은 분배 형평성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광산 활동처럼 중남미 지역에 풍부한 다양한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물의 분배 형평성은 파괴된다. 물 사용 독점과 채굴 활동으로 인한 수질 오염 등에 대해 지역 및 원주민 공동체들은 저항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새로운 물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과정에서 시민들의 저항 목소리가 배제되는 탓에, 갈등과 분쟁의 현장은 언제나 공청회장과 의회보다는 거리나 광장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 물 관리, ‘누가’를 넘어 ‘어떻게’를 묻는 시대

2019년 현재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미의 과테말라, 남미의 콜롬비아ㆍ브라질ㆍ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전역에서 발생하는 물 분쟁들은 이제 기존의 ‘누가(국가인가 기업인가) 물을 관리·분배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고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 혹은 지방정부가 공공재인 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는지에 대한 갈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방)정부, 채굴기업, 그리고 범죄조직, 주민 저항 등이 중첩적으로 복잡하게 개입되면서 늘 갈등과 분쟁은 폭력은 물론 많은 사상자를 내거나 오랜 동안의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올해 1월 발생한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광산 댐 붕괴사고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파라오페바 강이 심각하게 오염돼 강물 사용이 금지됐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길이가 546.5㎞인 파라오페바 강 가운데 최소 300㎞ 구간의 생태계가 거의 파괴되었으며, 강의 중금속 오염도가 허용치의 600배를 넘었다. 또한 600만㎥의 광산 쓰레기 등이 인근 강으로 흘러들어 대서양으로 이동하는 동안 인근 주민 25만 명이 식수로 마시지 못했고, 물고기 수천 마리가 폐사해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일보

올해 1월 발생한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브루마지뉴 지역의 광산 폐수 저장용 댐 붕괴 사고 이전과 이후 모습.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끄리 정부는 남부 파나코니아 지방의 자연보호 구역에서 대형 댐 건설을 추진하면서 논란과 갈등을 낳고 있다. 이는 중국기업이 투자한 약 57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로 향후 아르헨티나 전력 공급의 4%에 달하는 에너지 공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지만, 법적인 자연보호ㆍ빙하보호 의무를 어기고 지속 불가능한 수력발전 댐 공사를 하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2016년 11월 무장 게릴라 단체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평화협정으로 50년의 내전을 마친 콜롬비아 정부는 평화 이후 ‘역설적인’ 물 분쟁을 경험하고 있다. 평화 협정 이후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현 정부는 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고, 현재 전국에서 농업과 광물 개발 프로젝트가 이행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동시다발적인 개발 압력은 자연히 자연과 생태, 특히 물의 이용과 분배 갈등을 촉발할 수밖에 없었다. 무분별하고 일방향적인 경제 개발 정책이 추진되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은 생태와 물 자원에 대한 엄청난 압력이 종국에는 또 다른 정치사회적 분쟁의 씨앗일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내전 이전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면서, 환경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주문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미 콜롬비아 시민들이 참여하는 물·생태 보호 시민운동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금이 없이는 살아도, 물이 없으면 죽는다’는 슬로건은 중남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일보

하상섭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