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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포토다큐] 돌에 새겼지만,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 통곡과 기다림의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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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분향소 앞 자갈밭에 놓여 있는 노란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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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색이 바랜, 낡아 찢어진 노란 리본들이 방파제 난간에 매달려 거친 바람 속에 나부낀다. 방파제와 옛 유가족 숙소 사이의 바다는 진도항 항만시설공사로 메워지고 있다.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공사안내 표지판들 뒤로 ‘세월호 가족식당’이 보이고, ‘세월호 팽목기억관’으로 이름을 바꾼 ‘팽목분향소’는 낡은 컨테이너 특유의 스산한 풍경을 자아낸다. 추모음악이 흐르는 분향소에 들어서자 304명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내려진 자리엔 단원고 학생들의 반별 단체사진이 방문객을 맞는다. 오른쪽 벽에 힘없이 걸려 있는 추모 현수막의 글귀가 시선을 붙잡는다.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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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에 매달린 노란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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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분향소 내부. 희생자들의 영정사진 대신 단원고 학생들의 반별 단체사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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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은 ‘통곡과 기다림’의 공간이었다. 희생자 가족들이 실낱같은 구조의 희망을 품고 아이들을 기다리던 곳, 그 아이들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와 가족들의 품에 안긴 곳이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선체 인양을 위해 힘겹고 긴 싸움을 이어나간 현장이다. 참사 이후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다짐을 되새긴 공간이기도 하다. 인양된 세월호 선체가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후에도 추모객들의 방문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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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조형물 뒤로 해가 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팽목항은 어수선하다. 참사 이후 중단됐던 진도항 2단계 확장공사가 재개되면서 ‘기억 공간’ 조성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진 탓이다. 유가족과 시민들로 구성된 ‘팽목 기억공간 조성을 위한 국민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4.16공원 조성, 희생자 기림비와 안치소 표지석 설치, 추모기록관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남도와 진도군은 추모기록관 건립에 난색을 표한다. 팽목항에서 조금 떨어진 서망항 인근에 세워질 ‘국민해양안전관’ 내에 추모기록관을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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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와 옛 유가족 숙소 사이의 바다는 매립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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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팽목기억관으로 이름을 바꾼 팽목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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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분향소 앞 울타리에 걸린 노란리본 고리. 녹슬고 색이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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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 홀로 남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고 고우재(단원고)군의 아버지 고영환씨(50)는 “팽목항은 유가족뿐아니라 생업을 마다하고 달려와 준 전국의 자원봉사자들, 민간 잠수사들, 진도 어민 등 온 국민이 함께 통곡하고 아픔을 같이 한 공간”이라며 “이 소중한 기억과 기록들을 위한 추모기록관은 바로 이 곳, 팽목항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책위가 원하는 추모기록관은 20~30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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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분향소 내부에 유일하게 놓여 있는 고 고우재 군의 영정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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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에 새겨진 ‘기억의 벽’ 그림 타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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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펜스에 매달려 있는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축구화. 박군의 어머니가 놓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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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기억을 위한 흔적들도 점점 사라진다. 녹슨 추모 조형물들, 비바람에 닳아진 ‘기억의 벽’ 그림타일, 퇴색한 채 여전히 난간에 매달려 있는 미수습자 박영인군의 축구화, 희미해져 가는 노란 리본에 적힌 손 글씨들…. 항구 확장공사가 본격화되면 사라질 수도 있다. 기억을 위한 공간 기록관은 팽목항, 바로 그 현장에 존재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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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 등대앞 세월호 추모 벤치에 놓여져 있는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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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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