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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빅 이슈’, 기레기 시대에서 파파라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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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드라마 <빅 이슈>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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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를 정상화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언론의 정상화였다. 당시 극장가와 방송가에 유행한 언론 소재 콘텐츠들이 그에 대한 열망을 잘 보여준다. 가령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공범자들>을 비롯한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들과 SBS <조작>, tvN <아르곤>처럼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들은, 소위 ‘기레기’로 불릴 만큼 추락한 언론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동시에 그러한 사태를 가속화한 언론탄압의 주역들을 비판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현실에서 진행 중이던 언론노동자들의 방송 정상화 파업과 함께 언론개혁에 대한 요구가 시대정신임을 새삼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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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론 정상화 노력이 2년째를 맞이한 지금의 현주소는 어떨까. 언론탄압과 검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으나, 언론개혁의 화두는 새로운 전기를 맞은 듯 보인다. 그동안 부패한 거악이라는, 분명한 적을 향한 투쟁에 가려져 있던 다른 문제들이 해결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악화된 생존 환경으로 인한 상업성, 선정성의 문제가 가장 심각해 보인다. 이러한 시대적 징후는 사실 그동안의 언론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도 이미 반영되어 있다.

가령 2015년 방영된 SBS <피노키오>는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우는 소신 있는 기자들이라는 기존 언론인 드라마의 전통적 주제를 이어가면서도, 상업주의라는 더 막강한 적과의 대결을 그린다. 극 중에서 MSC 방송국의 송차옥(진경)은 “시청자에게 먹히는 것은 팩트보다 임팩트”라며 선정적 보도를 서슴지 않는 대표적인 ‘기레기’지만, 그 덕에 출연 프로그램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2017년 나란히 방영된 두 언론인 드라마, SBS <조작>과 tvN <아르곤>에도 같은 그림자가 드러난다. 두 작품에서 신념 있는 기자들의 주요 대결 상대는 국정농단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절대 권력이었지만, 언론사 내부로 들어가 보면 상업주의 논리로 인해 갈수록 입지가 축소되어 가는 기자들의 고민이 녹아 있다. 두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거나 존폐 위기에 시달리는 탐사보도팀의 문제를 그려낸다.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미스티>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주인공 고혜란(김남주)은 올해의 언론인상을 5년 연속 수상할 만큼 최고의 앵커로 평가받지만, 그가 진행하는 뉴스는 동시간대 경쟁사 뉴스와 늘 실시간 시청률로 비교당한다. 광고주인 대기업의 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회장의 문책을 받기도 한다. 정의실현을 구현하고자 하는 고혜란 역시 어쩔 수 없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캐내는 여성잡지 기자 윤송이(김수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 같은 언론 환경의 변화가 제일 잘 드러난 드라마는 현재 SBS에서 방영 중인 수목드라마 <빅 이슈>다. 이 드라마는 이제 ‘기레기’를 넘어 파파라치가 된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를 기자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인물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두 주인공인 지수현(한예슬)과 한석주(주진모)의 과거사만 보면, 모두 정의로운 언론인의 이상이 살아있던 시절의 전형적 설정에 가깝다. 악명 높은 연예 파파라치 신문 선데이통신 편집장 지수현은 한때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를 꿈꿨고, 남다른 파파라치 실력으로 그녀에게 특별 채용된 한석주 역시 원래는 시대의 진실을 한 컷의 사진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이들이 “악질 파파라치”로 전락한 데에도 역시 상업 논리가 작용한다. 나라일보의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종이 필요했던 한석주는 특권층과 연결된 채움클리닉 김원장(조덕현)의 성추행 장면을 포착한 사진으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성폭력을 폭로해야 한다는 그의 명분과 최대한 선정적으로 찍은 사진 사이에는 분명한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지수현의 경우, 그 변화에는 인터넷 매체 기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작용했지만, 결국에는 돈이 곧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은 그 자신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피도 눈물도 없는 악질 파파라치야. (중략) 우리한테 기자윤리강령, 사진기자 윤리규정 그런 거 없어. 독자가 원한다면 뭐든 내보내. 연예인 사생활 따위 눈 깜짝도 안 해. 애초에 그런 거 걱정하는 기자 따위에겐 투자하지도 않고.” 한석주를 채용할 때 지수현이 던진 말은 기존의 소신 있는 언론인 주인공 드라마를 대놓고 조롱한다.

방영 초반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빅 이슈>는 현재 일명 ‘버닝썬 게이트’를 연상시키는 드라마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비슷한 것은 그 안의 연예계 스캔들이 아니라 파파라치나 다름없는 민낯을 드러낸 언론의 현실이다. 연예인, 강간, 마약, 성매매 알선, 불법촬영 등 온갖 자극적인 이슈가 총집합된 버닝썬 게이트는 그 범죄의 스케일, 추악함과 별도로 현재 우리 언론의 상업성과 선정성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라는 의외의 기능을 하는 듯하다. <빅 이슈>의 모티브를 제공한 매체답게 피해자의 구체적인 직업을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한 디스패치와 피해자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 채널A는, 선정적 속보 경쟁의 한 사례일 뿐이다. <빅 이슈>는 의도치 않게, 이 시대 언론을 너무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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