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인 유진그룹의 계열사인 EHC가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벤처부)를 상대로 낸 ‘개점연기 권고처분 취소소송’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문득 ‘답정너’란 말이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EHC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일보가 이를 단독보도<중앙일보 3월21일자 B2면> 했다. 서울 금천구에 DIY 인테리어 전문점을 내려던 EHC는 주변 상인들의 반대에 부닥쳤고, 상인들과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한 EHC 측은 중기벤처부로부터 ‘3년간 개점을 연기하라’는 처분을 받았다가 이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유진그룹 계열사인 EHC가 출점한 에이스 홈센터 매장 내부. 이곳에선 2만여 종의 인테리어 관련 용품을 판매한다. 사진 EH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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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벤처부의 주요 고객은 말할 것도 없이 중소ㆍ벤처기업과 중소 상공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롯데ㆍ신세계 같은 유통 대기업으로부터 지켜낼 가장 큰 무기가 사업조정제도다. 하지만 사업조정제도 자체의 좋은 취지를 떠나 ‘대기업ㆍ중견기업의 상권 진출은 무조건 나쁘다’란 아집에 빠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중소상공인은 선(善), 대기업은 악(惡)’이란 이분법적 사고도 피해야 한다. 이미 몇몇 지역에선 사업조정제도의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대기업이 해당 지역의 상인 단체와 개점 조건을 타협해도 또 다른 상인단체가 나타나 추가 지원금 등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렇다면 누가 선인가.
중기벤처부는 최대한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 중소벤처기업과 중소상공인을 도울 길을 찾아야 한다. 재판부의 지적대로 피해 예상액을 다른 지역에 있는 비슷한 점포의 영업 실적과 그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했으면 어땠을까.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결국 행정의 예측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예측 가능성이란 객관성에서 나온다. ‘답정너’ 행정과는 반대다. 이수기 산업2팀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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