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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71년 만에 바로잡는 ‘여순사건’…“국민 구제가 법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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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 재심’ 첫 결정

유족 청구 7년 만에…1·2심 이어 대법 전원합의체도 인용

대법관 9명 “군경 무차별 체포·감금…목격자 진술 부합”

유족 측 “재판 속히 열려 당시 군법회의 불법성 밝혀지길”


사형 집행 71년 만에 여순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이 결정됐다. 여순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 결정은 처음이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내란과 국권문란죄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장모씨와 신모씨, 이모씨 유족이 낸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정부 반군토벌전투사령부가 ‘제주 4·3사건’ 진압 파견 명령에 반발한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진압군은 여수와 순천 지역을 탈환한 후 반란군에 협조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여러 민간인들을 재판도 열지 않고 총살했다. 2007~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438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다는 조사 결과를 냈다.

당시 기관사로 근무한 장씨는 순천역으로 출근했다가 갑자기 동료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연행돼 감금됐다. 그해 11월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는 장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장씨는 순천시 조곡동 야산에서 사형 판결이 집행돼 총살됐다. 신씨와 이씨도 순천시에서 경찰에 체포·연행된 후 사형 판결이 집행됐다.

유족들은 경찰 등이 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해 유죄 판결이 나왔기에 재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불법 체포·감금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재심을 해선 안된다고 했다.

1·2심 재판부는 장씨 등에 대한 체포·연행 과정이 불법했다며 재심을 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정리위가 여순사건 관련 공식 문서를 조사했으나 장씨 등에 대한 영장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영장 발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는 점이 판단 근거였다. 대법원도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9명은 “과거사정리위의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에는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고 그 후 조사 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취조와 고문이 자행됐다고 기재돼 있다”며 “연행된 다음 즉결처분 또는 군법회의 회부로 나뉘었으므로 연행 당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사형 판결이 집행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판결집행명령서와 당시 언론보도도 증거로 인정됐다.

특히 김재형·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대법원은 국가공권력의 위헌·위법한 작용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피고인들과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해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며 “(희생자들을) 구제할 다른 특별법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또 “구체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재심제도의 이념에 충실하게 피고인들과 유족들을 구제해야 한다”며 “그것이 법원의 역할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최종적인 권리구제 기관으로서 대법원에 요구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반대의견은 4명 있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당시 경찰 등의 불법행위가 확정판결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판결문이 없어 장씨 등에 대한 사형 판결이 실제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재심 청구 인용을 반대했다.

유족들이 재심 청구를 하고 대법원 결정이 나오기까지 무려 7년이 넘게 걸렸다. 유족 측 김진영 변호사는 “군법회의는 255명의 피고인에 대해 며칠 만에 재판을 진행하고 이 중 102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며 “재심 재판이 속히 열려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 판결의 총체적 불법성을 확인하는 법원의 판단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재심 재판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진행된다.

이혜리·유설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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