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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포럼] 21세기 강대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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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7세기 초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라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를 설립해 세계 제패의 단초를 만든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새로운 기업 형태를 도입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데 이어 외국과의 전쟁 선포나 군인 모집 같은 일부 국가 권력을 위임받기도 한다. 유럽에서도 작은 나라였던 네덜란드는 지금의 뉴욕 맨해튼까지 점령해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지명까지 붙일 정도로 지배력을 키웠다. 중남미 카리브해와 아시아 인도네시아 일부는 물론이고 뉴질랜드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여느 제국이나 마찬가지로 패권은 유한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영국과 세 차례나 싸우며 승리했지만 국력을 소진한다. 18세기 말에 접어들며 세계 최강 네덜란드 해군도 영국에 패한다. 근대식 군함으로 무장한 영국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네덜란드는 경제력을 키웠지만 군비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강대국 지위를 영국에 물려줘야 했다.

대영제국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증기기관과 같은 혁신적 기계와 제품을 내놓으면서 식민지를 개척한다.

20세기에 들어선 대영제국도 세계 패권을 물려줘야 했다. 영국이 1차 산업혁명에 안주하는 동안 미국은 영국을 넘보는 '기술 추격'에 이어 전기 발명과 대량생산체제를 내세우며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결과였다.

당초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자원, 큰 내수시장 때문에 굳이 해외로 진출할 필요성이 없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자국 이익이 침해당하자 전쟁에 참여하면서 외연을 자연스럽게 넓힌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은 너무 컸다. 바로 대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숨통을 틔운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무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몸집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했고 수출길도 넓힐 수 있었다. 자동차 회사인 포드가 대표적이다. 포드는 2차 대전 기간 중 B-24폭격기를 대량생산하면서 호황을 구가했다. 미국이 1·2차 대전을 치르면서 역사상 가장 큰 지역을 '관할'하는 거대 제국으로 성장한 비결이다. 2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기반으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서 패권국가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

미국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7년부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패권이 흔들리게 된다. 그사이 급부상한 경쟁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미국이 비틀거리는 사이에 국가 주도형 기술 '개발과 혁신'을 통해 비약적인 경제력 향상에 성공한다. 결국 중국 경제는 미국 턱밑까지 치고 올라선다. 4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의 첨단 무기 개발을 통해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위협할 정도다.

요즘 양국 간 무역전쟁은 사실 알고 보면 경제전쟁이라기보다는 4차 산업혁명 기반 첨단 군사기술인 '밀리테크4.0'을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패권전쟁이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중국 인민해방군 현역 군인이 무려 3000명에 달한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유심히 참고할 만하다. 중국은 첨단 기술 흡수를 위해 미국 중견기업 인수를 추진하지만 미국의 견제로 쉽지 않자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를 늘렸다. 이마저도 어려워지자 이젠 이스라엘 벤처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모든 작업은 중국이 과거 강대국처럼 제국 또는 패권국의 길로 접어들려는 일환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조건이 경제력과 군사력이란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경제와 군사력이 강대국의 필요조건이라면 관용과 포용 능력은 충분조건이다. 영국은 약탈이 아닌 포용적 제도를 식민지에 심어준 결과 상당수 식민지들이 독립 이후에도 대영제국의 일원이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옛 로마제국도 점령국 시민을 제국의 파트너로 만들었다. 미국도 이민에 대해 관대한 결과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만큼 이방인을 떠안을 정도로 내부 경쟁력에 자신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밀리테크4.0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렇다면 미들파워(중견국)인 한국은 강대국으로 도약할 준비가 돼 있는가. 경제나 군사력은 물론 외국인들에 대한 포용력은 둘째 치자. 우리 사회가 내부 국민끼리의 다양성을 껴안을 자세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과거 정권의 대부분 유산을 적폐로 몰아세우는 정치권만 탓하기엔 비난받을 분야가 너무 많다는 게 우리 현실이다.

[김명수 지식부장 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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