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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특파원리포트] 미세먼지 해결, 중국이 협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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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만으론 부족… 희생 감수할 의지 필요

베이징(北京)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중국 날씨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세먼지다. 특파원 부임 직전인 2017년 1월 사전 준비차 베이징 출장을 왔다.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에 한숨이 절로 났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횡단보도 맞은편 신호등의 파란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3년을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도 있었다. 특파원 부임 전 주변 지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공기가 안 좋다”는 우려였다.

처음에는 공기가 안 좋은 날이면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눈물도 자주 났다. 지금은 공기오염지수(AQI)가 200 가까이가 돼도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지인들은 “중국 공기에 적응했다”며 농담 반으로 격려를 해준다. 집에는 일회용부터 방독면 같은 큰 마스크까지 종류별로 있다. 공기청정기만 3대다. 3대를 동시에 돌리는 날엔 청정기가 집안 공기 정화에도 힘이 부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세계일보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지난 3월 5일 양회(兩會) 중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 아침도 공기가 좋지 않았다. 오전 8시(현지시간) 기준으로 베이징 AQI가 256을 기록했다. 최악 단계 바로 아래인 5급 ‘심각한 오염’ 수준이다. 특파원들은 보통 양회 전인대 개막식에 참석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정부 공작보고 취재를 위해서다. 집에서 새벽 6시쯤 나와 7시까지는 톈안먼(天安門) 광장 맞은편 인민대회당 앞으로 가서 출입이 허용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날도 도착하니 길게 줄을 서 기다리는 기자들이 보였다. AQI가 300 가까이 되는 날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 이상 서 있는 것은 여간 피곤한 경험이 아니다.

최근에 우리 정부가 중국과 미세먼지 책임을 놓고 한바탕 일전을 벌였다. 과거에도 몇 차례 공방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국민적 감정이 폭발한 것은 한국 내 미세먼지 악화 영향이 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한·중 공조방안 마련을 지시하면서 사건이 촉발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가 “한국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책임론을 부인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황사도 그렇고 편서풍이 불 때마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영향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외교의 영역’이다. 더구나 중국은 국가 간 분쟁에서 ‘자국 책임론’을 인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형세가 유리할 때는 힘으로 제압하고, 불리하면 국제법과 관행 뒤에 방패를 치는 것을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때나 남중국해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벌써부터 중국은 미세먼지 책임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세다. 환경부가 미국 나사(NASA)와 대기질 공동조사를 벌이기로 하자 중국 관영언론은 “기어코 한국이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하다.

최근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노력’이 69.9%로 가장 많았다. ‘차량 2부제 등 정부 규제 강화’는 11.0%로 가장 낮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의 지난 7일 조사에서도 민간 차량 2부제 실시는 찬성이 54.4%에 불과했다. 미세먼지는 중국발 원인이 크다는 정서가 반영됐고, 2부제 실시에 따른 불편함도 고려된 듯하다. 재난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희생을 먼저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절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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