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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사이언스프리즘] 숲을 훼손시키면 재앙이 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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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야산마다 태양광패널 난립 / 산림 파괴·사막지역의 표면 역할 / 국지적으론 지상기온 상승시켜 / 어느정도의 재앙 다가올지 몰라

미세먼지가 유난히 심했던 올해에도 새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나타났다. 집 안팎에, 거리에, 그리고 야산에 울긋불긋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올 2월과 3월 초의 기온이 높았기 때문인지 봄꽃이 피는 시기가 평년보다 1주일가량 앞당겨졌다. 일정 온도 이상의 하루평균 온도를 합산한 값을 ‘적산온도’라고 하는데, 봄꽃은 이 온도가 임계값에 도달하면 핀다. 꽃마다 고유한 적산온도 임계값이 있어서 꽃이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

서울에서는 1923년부터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복숭아 등 봄꽃 개화일을 관측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의 개화일을 분석해 보니 1920년대와 비교해 요즘 20여일 정도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 후손은 2월에 새봄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세계일보

허창회 서울대 교수·대기과학


개화일이 빨라진 원인은 지상기온이 지난 100년 동안 섭씨 2도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기온이 상승한 만큼 적산온도의 임계값에 도달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이처럼 식물 생태계, 즉 식생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데, 역으로 식생이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식생의 역할이 지표면 반사도와 증발산량의 변화에 국한돼 온실가스 등의 직·간접적 영향과 비교해 그 역할이 훨씬 적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생이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확실하며 그 역할이 결코 적지 않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 봄 식생과 기온상승과의 연관성을 살펴봤을 때 식생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과 비교해 10년에 섭씨 0.4도 정도 지구온난화가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식물의 잎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4월 중순 이후에는 그 이전과 비교해 온난화가 뚜렷하게 작아졌다. 식생이 지구온난화를 약화시키는 천연에어컨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식생의 천연에어컨은 열섬효과가 더해져 기온의 상승이 우리나라 평균보다 훨씬 가파르게 나타나는 도심에서 뚜렷한 효과를 나타낸다. 작년 여름에 기승을 부렸던 폭염도 그나마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산이나 공원, 그리고 가로수가 있어서 참을 만했다.

식생이 기후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예가 있다. 한반도 면적의 3배에 이르는 중국 화북평원에서 생산되는 밀과 옥수수는 그 양이 중국 내 곡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 이 지역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작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초겨울에 파종한 밀을 늦봄에 수확하고, 여름에 파종한 옥수수를 늦가을에 수확하는 이모작을 하고 있다. 결국 밀 수확이 끝나고 옥수수 새싹이 나기 전인 초여름에는 이 드넓은 곡창지역이 일시적으로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이 된다. 이 일시적 사막화의 영향으로 해가 뜨는 정오에는 화북평원 지상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국지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화북평원 이모작으로 우리나라 장마의 양상이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맛비가 올 때에는 더 많이 오고, 적게 내릴 때에는 더 적게 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친환경 에너지 수급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태양광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논이나 밭뿐만 아니라 야산에도 세워지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산림 측면에서는 야산의 나무가 상대적으로 보전할 가치가 적어 베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후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야산의 나무가 증발산량을 증가시켜 지상기온을 낮추는 에어컨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 설치한 태양광 패널은 말할 나위 없이 사막지역의 표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들 면적이 좁다면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태양 패널이 설치된 면적이 넓어질수록 우리나라에는 사막 역할을 하는 지역이 더 늘어나고 이로 인한 영향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국지적으로는 지상기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어느 정도의 재앙이 초래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창회 서울대 교수·대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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